3월의 어느 저녁이었습니다. 상담 온 어머니가 대뜸 수강료부터 물었습니다. "옆 학원은 28만 원이던데요." 저는 곧장 그 숫자에 끌려 들어갔습니다. "저희가 수업이 한 타임 더 길어서요. 그래도 정 그러시면 첫 달은 좀…" 어머니도 한 발, 저도 한 발. 우리는 한 시간 내내 한 숫자만 두고 줄다리기를 했습니다. 끝에 가서 저는 5만 원을 깎아드렸고, 어머니는 그래도 표정이 안 좋았습니다. 둘 다 진 협상이었습니다.
저는 그게 제가 가격을 잘 못 지켜서인 줄 알았습니다.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그날 우리는 처음부터 엉뚱한 걸 두고 싸우고 있었다는 걸요.
이 책에서 제가 건진 건 딱 세 가지입니다. 원장님께 그것만, 대신 제대로 전합니다.
흥정의 책이 아니라, 흥정을 그만두는 책
하버드 공개강의 연구회가 엮은 이 책은, 로저 피셔와 윌리엄 유리의 하버드 협상 프로젝트(『Getting to Yes』로 유명한 그 연구)를 사례 중심으로 풀어낸 입문서입니다. 듀폰·캠프데이비드·키신저 같은 굵직한 협상 이야기가 곳곳에 깔려 있어 가볍게 읽힙니다.
흔히 협상이라 하면 둘 중 하나를 떠올립니다. 더 세게 부르고 버티는 '힘겨루기', 아니면 가운데서 만나는 '흥정'. 둘 다 같은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파이는 정해져 있고, 내가 더 가지려면 상대가 덜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책은 바로 그 전제를 내려놓으라고 말합니다. 핵심은 한 문장입니다. 입장(겉으로 내세우는 요구)이 아니라 이해관계(그 밑에 숨은 진짜 욕구)를 협상하라. 저자들은 사람과 문제를 분리하고, 시장가·선례 같은 객관적 기준 위에서, 함께 파이를 키우는 길을 찾으라고 합니다. 이걸 '원칙협상'이라 부릅니다.
연극으로 치면 이렇습니다. 흥정은 한 개의 파이를 누가 더 크게 자르느냐의 싸움입니다. 원칙협상은 무대를 바꿉니다. "그런데 우리, 왜 이 파이가 필요했죠?"를 먼저 묻는 겁니다. 묻고 나면 파이가 두 개일 때가 의외로 많습니다.
원장이 건질 수 있는 것 (세 가지)
1. 입장 말고, 그 밑의 이해관계를 캐세요
오렌지 하나를 두고 두 자매가 다툰 이야기가 협상학에서 두고두고 인용됩니다. 둘 다 "오렌지 내가 가질래"라고 했습니다. 똑같은 입장이었지요. 결국 공평하게 반으로 갈랐습니다. 그런데 언니는 빵을 구우려고 껍질만 필요했고, 동생은 주스를 짜려고 과육만 필요했습니다. 반으로 가르는 바람에 둘 다 절반씩 버렸습니다. 만약 "오렌지를 왜 원하느냐"고 한 번만 물었다면, 언니는 껍질을 통째로, 동생은 과육을 통째로 가졌을 겁니다. 입장은 부딪쳤지만, 이해관계는 부딪칠 일이 없었던 거지요.
오늘 당장 해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28만 원이던데요"라고 할 때, 그 숫자를 받지 마세요. 한 겹 아래를 물으세요. "어머니, 비용을 신경 쓰시는 건 형편 때문이실까요, 아니면 이만큼 내는 값을 할지가 미덥지 않으셔서일까요?" 앞이면 결제 방식(분납·형제 할인)으로 풀립니다. 뒤면 가격이 아니라 한 달 성장 리포트로 풀립니다. 수강료라는 '입장' 밑에는 늘 다른 이해관계가 깔려 있습니다.
2. 사람을 공격하지 말고, 문제를 같은 편에서 마주 보세요
이 책이 거듭 강조하는 원칙이 '일과 사람의 분리'입니다. 입장 싸움이 무서운 건, 어느새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공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가격엔 안 됩니다"가 "그렇게 깎으려는 분은 곤란합니다"로 미끄러지는 순간, 어머니는 방어막을 칩니다.
저자들은 자리를 바꾸라고 합니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서로를 노려보는 그림이 아니라, 둘이 나란히 앉아 같은 종이 한 장을 함께 들여다보는 그림으로요. 적은 상대가 아니라, 책상 위에 놓인 '아이의 성적 문제'입니다.
그러니 상담에서 말의 방향을 바꿔 보세요. "어머니가 너무 깎으시려 한다"가 아니라, "우리 둘이 같이, 민재한테 가장 맞는 방법을 한번 찾아봅시다"로요. 호칭 하나, 시선 하나가 바뀌면 협상이 대결에서 협업으로 넘어갑니다.
3. 내 기분도 상대 기분도 아닌, 객관적 기준 위에 올려놓으세요
힘겨루기의 가장 큰 비용은 관계가 상한다는 점입니다. 내 고집과 상대 고집이 맞부딪히니까요. 이 책은 둘 다 내려놓고 '객관적 기준' 위에서 판단하라고 합니다. 시장가, 업계 선례, 공인된 데이터 같은 것이요. 그래야 "내가 우겨서"가 아니라 "기준이 그러해서" 합의가 되고, 진 사람도 자존심이 안 상합니다.
오늘 적용한다면 이렇습니다. 수강료를 두고 실랑이하는 대신, 같은 지역 같은 과목의 시간당 단가표를 펼쳐 놓으세요. "저희가 비싼 게 아니라, 이 동네 평균이 이렇고 저희는 수업 시간이 1.5배입니다." 숫자가 말하게 하면, 원장님은 깎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기준을 함께 확인하는 사람이 됩니다.
단, 이 책을 덮어야 할 원장도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이 책은 사례 모음 입문서라, 넓게 훑기엔 좋지만 깊이 파고들진 않습니다. 류재언 『협상 바이블』과 개념·사례가 많이 겹치고요. 한 분야를 깊게 파고 싶은 원장님껜 살짝 얕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칙협상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상대가 끝까지 힘겨루기로만 나오고 함께 파이를 키울 뜻이 전혀 없을 때, "이해관계를 봅시다"는 순진한 양보로 이용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도 결렬 시의 대안(BATNA)을 함께 쥐라고 일러둡니다. 윈-윈은 선의가 아니라 준비된 자의 전략입니다.
읽고 나면 달라지는 한 줄 — 앤디의 렌즈
사실 제가 옮긴 건 책의 일부입니다. 두 나라가 끝내 합의에 이른 캠프데이비드 협상이 어떻게 '입장'을 버리고 '진짜 욕구'로 풀렸는지, 그 결정적 한 수가 무엇이었는지 같은 이야기가 더 있습니다. 그 디테일은 책에서 직접 만나시는 게 낫습니다.
저는 이렇게 읽습니다. 우리는 상담이 막히면 늘 같은 자리에서 더 버티거나 더 깎습니다. 숫자 하나를 두고 줄다리기를 하지요. 그런데 이 책은 줄다리기를 멈추고 묻으라고 합니다. "이 줄을, 우리는 대체 왜 당기고 있죠?"
원장님이 깎고 있던 건 수강료가 아닙니다. 어머니가 진짜로 원한 건, 처음부터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번 주에 딱 하나만 해보십시오. 다음 상담에서 어머니가 가격이든 시간이든 무언가를 요구하면, 그 자리에서 답하지 말고 한 번만 되물으세요. "그게 왜 중요하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 한 줄이, 깎기 싸움을 가치 만들기로 바꿉니다.
| 하버드 협상 강의 — 哈佛谈判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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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드 공개강의 연구회 저 · 송은진 역 |
| 작은우주(북아지트) · 2018 |
"원장님이 깎고 있던 건 수강료가 아닙니다. 어머니가 진짜로 원한 건, 처음부터 다른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