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노트

최고의 협상가는 자기 자신을 안다

최고의 협상가는 비법을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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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협상가는 자기 자신을 안다

지난봄 상담실에서였습니다. 목소리가 크고 요구가 분명한 어머니가 앉아 계셨습니다. "원장님, 형 다닐 때처럼 동생도 형값으로 해주셔야죠." 저는 그 자리에서 "네, 그럼 그렇게…"라고 말해버렸습니다. 따지고 보면 손해였는데, 그 분위기에서는 거절이 도무지 입에서 안 나왔습니다. 끝나고 나서야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저는 한참 동안 그게 제 '협상 기술'이 부족한 탓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협상 책을 뒤지며 멘트와 기술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센 학부모 앞에만 서면, 외운 기술은 머릿속에서 다 날아갔습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제 '성격'이었고, 그 사실을 정면으로 짚어준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이 책에서 제가 건진 건 딱 세 가지입니다. 원장님께 그것만, 대신 제대로 전합니다.

다른 협상책이 '필살기'를 줄 때, 셸은 "먼저 너 자신을 알라"고 합니다

G. 리처드 셸. 미국 와튼 비즈니스스쿨에서 임원들에게 협상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이 책은 그 와튼 협상 강의의 표준 교과서로, 10개국 넘게 번역됐습니다.

대부분의 협상책은 '기술'을 팝니다. 이렇게 앵커를 던져라, 이렇게 양보하라, 이런 화법을 써라. 그런데 셸은 책의 첫 장을 기술이 아니라 거울에서 시작합니다. "만능 협상 전략 같은 건 없다"고 못을 박으면서요. 사람마다, 상황마다 변수가 너무 많아 모두에게 듣는 단 하나의 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셸이 가장 먼저 시키는 일은, 상대를 분석하는 게 아니라 '나'를 진단하는 일입니다. 그는 협상 성격을 다섯 가지로 나눕니다. 갈등을 피하는 회피형, 상대에 맞춰주는 순응형, 적당히 나누는 타협형, 끝까지 밀어붙이는 경쟁형, 둘 다 살리려는 협력형. 어느 하나가 정답은 아닙니다. 핵심은 "내가 어느 쪽인지를 알고, 나답게 협상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걸 무술에 빗대 읽었습니다. 같은 업어치기라도 나보다 덩치 큰 상대와 빠른 상대에게 거는 법이 다릅니다. 한 가지 필살기로 모든 상대를 다 넘기는 고수는 없습니다. 고수는 상대의 체격과 기술을 읽고, 그 순간에 맞는 기술을 골라 겁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 몸이 어떤 몸인가'를 아는 데서 출발하지요.

원장이 건질 수 있는 것 (세 가지)

1. 먼저 거울을 보십시오 — 내 협상 성격부터 진단하기

저처럼 거절을 못 하는 원장은 '순응형'에 가깝습니다. 이게 나쁜 게 아닙니다. 학부모와 오래 관계를 쌓는 데는 순응형이 외려 강합니다. 문제는 그 성격을 모른 채 협상에 들어갈 때입니다. 자기 약점을 모르면 매번 같은 자리에서 넘어집니다.

오늘 당장 해볼 수 있습니다. 종이에 최근 손해 봤던 상담 세 건을 적어보세요. 그리고 물어보세요. "나는 그때 갈등이 무서워서 양보했나, 관계를 지키려고 양보했나?" 패턴이 보일 겁니다. 셸은 책 뒤에 자기 성격을 점수로 재보는 진단 도구까지 붙여뒀습니다. 어떤 항목으로 그걸 재는지, 그 디테일은 책에서 직접 확인하시는 게 낫습니다. 거울을 보는 것, 거기서부터가 시작입니다.

2. 이 상담이 '거래'인지 '관계'인지부터 판별하십시오

셸의 진짜 무기는 여기 있습니다. 그는 모든 협상을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와 '이해가 얼마나 충돌하는가', 이 두 잣대로 갈라 봅니다. 그러면 상황이 크게 네 가지로 나뉩니다. 한 번 보고 말 거래, 길게 가는 관계, 둘 다 걸린 균형, 서로 부딪칠 일 없는 조율.

학원 상담실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처음 문의 온 학부모와의 단가 협상은 '거래'에 가깝습니다. 반면 3년째 두 아이를 맡긴 단골 어머니와의 협상은 '관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이 둘에 같은 태도로 임합니다. 거래에서 너무 물러서 손해를 보거나, 관계에서 너무 빡빡하게 굴어 정을 떼지요.

그러니 상담 전에 한 줄만 적어두세요. "이건 거래인가, 관계인가." 거래라면 내 기준을 분명히 세우고 단호해도 됩니다. 관계라면 오늘 조금 내주더라도 길게 봐야 합니다. 같은 기술도 어떤 매트 위에서 거느냐에 따라 정반대가 됩니다.

3. 마지노선이 아니라 '높은 기대치'에 닻을 내리십시오

셸은 협상 전에 정해야 할 게 '버틸 수 있는 최저선'이 아니라 '내가 정당하게 바랄 수 있는 최고치'라고 말합니다. 연구상 높은 기대치를 품고 들어간 쪽이 실제로 더 나은 결과를 가져갔습니다. 마지노선만 정하고 들어가면, 협상은 그 바닥선을 향해 흘러내립니다.

이번 상담부터 숫자를 두 개 적어두세요. 하나는 '여기 밑으로는 안 된다'는 최저선, 다른 하나는 '이게 가장 정당한 최선이다'는 기대치. 그리고 머릿속 닻은 기대치에 거십시오. 형값을 요구받았을 때 "그건 어렵습니다" 한마디가 안 나왔던 건, 제 머릿속에 기대치가 없고 '거절당하기 싫다'는 두려움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 이 책을 덮어야 할 원장도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이 책은 두껍고 학술적입니다. 와튼 강의 교과서라 사례가 풍부한 대신, 당장 내일 쓸 한 문장짜리 멘트를 찾는 분께는 답답할 수 있습니다. 빠른 처방을 원하신다면 더 가벼운 실무서가 맞습니다.

그리고 셸의 강점인 '진단'은, 뒤집으면 약점이기도 합니다. 자기 성격과 상황을 분석하는 데 머물다 정작 행동을 안 하면, 생각만 많고 결단은 못 하는 원장이 됩니다. 진단은 출발선이지 결승선이 아닙니다.

읽고 나면 달라지는 한 줄 — 앤디의 렌즈

저는 이렇게 읽습니다. 우리는 협상이 안 풀리면 늘 무언가를 '더하려' 합니다. 기술을 더 배우고, 멘트를 더 외우고, 자료를 더 채우지요. 그런데 셸은 정반대를 말합니다. 더하기 전에 멈추고, 먼저 두 가지를 들여다보라고. 하나는 '나는 어떤 협상가인가', 다른 하나는 '이건 어떤 상황인가'.

기술은 무술의 기술처럼 누구나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술을 언제 어떻게 걸지는, 내 몸과 상대의 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만 정합니다. 최고의 협상가는 비법을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번 주에 딱 하나만 해보십시오. 다음 상담 전, 종이 맨 위에 두 줄을 적어두는 겁니다. "나는 (회피·순응·타협·경쟁·협력) 중 ◯◯형이다." 그리고 "이 상담은 (거래·관계) 중 ◯◯이다." 이 두 줄이, 외운 기술보다 원장님을 더 든든하게 지켜줍니다.


Bargaining for Advantage — Negotiation Strategies for Reasonable People
G. 리처드 셸 저
Penguin Books · 2006 (2판)

"최고의 협상가는 비법을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