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설득하지 말고 쉽게 만들어 주세요

안 움직이는 건 의지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가는 길에 작은 턱이 하나 있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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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등록 기간이었습니다. 혜택도 좋았고, 안내문도 정성껏 썼고, 설명회에서 조목조목 다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신청서는 책상에 그대로 쌓여 있었습니다. 학부모들이 "좋다"고는 하는데,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저는 더 설득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정보를 더 주고, 혜택을 더 얹으면.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알았습니다. 문제는 학부모의 마음이 아니라, 신청까지 가는 '길'에 있었다는 걸요.

강요도 방임도 아닌, 제3의 길

리처드 탈러(이 책으로 이어진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와 캐스 선스타인이 쓴 이 책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길은 그동안 둘뿐이라고 여겨졌습니다. 하나는 설득·교육·정보 — 부드럽지만 잘 안 통합니다. 다른 하나는 규제·금지·벌금 — 강하지만 자유를 빼앗습니다.

이 책은 제3의 길을 냅니다. 선택의 자유는 100퍼센트 그대로 두면서, 환경을 살짝 설계해 더 나은 쪽으로 부드럽게 미는 것. 저자들은 이걸 '넛지(옆구리 슬쩍 찌르기)'라 부릅니다. 모순처럼 들리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습니다.

쉽게 말하면 자동차 내비게이션입니다. 우회전을 권하지만, 당신이 직진해도 잔소리하지 않습니다. 언제든 "아니요"가 쉽습니다. 카너먼이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의 편향을 '진단'했다면, 이 책은 그 편향을 거슬러 싸우는 대신 역이용해 좋은 결과로 흐르게 합니다.

원장이 건질 수 있는 것 (세 가지)

1. 기본값(디폴트)이 결과를 정합니다

사회과학에서 가장 유명한 그래프가 이 책에 나옵니다. 장기기증 동의율이 어떤 나라는 12퍼센트, 옆 나라는 99퍼센트입니다. 국민성 차이가 아닙니다. 딱 하나, '기본값'만 다릅니다. 한쪽은 "원하면 신청", 다른 쪽은 "원치 않으면 해지"였을 뿐입니다. 사람은 대개 기본값에 그대로 머뭅니다.

오늘 당장. 우리 학원의 기본값을 점검하세요. 재등록·보충수업·알림 수신이 '신청해야 됨'인가요, '안 하면 자동'인가요? 학부모에게 이로운 쪽을 기본값으로 두되, 해지는 반드시 쉽게 — 이게 핵심입니다.

2. 설득하지 말고, 마찰을 없애세요

예일대 학생들에게 파상풍 위험을 아무리 강의해도 접종률은 3퍼센트였습니다. 그런데 보건소 위치를 표시한 지도 한 장과 "언제 갈지" 적는 칸을 더했더니 28퍼센트로 뛰었습니다. 마음을 바꾼 게 아닙니다. 가는 길의 작은 턱을 치운 겁니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딱 하나만 기억하라면 "쉽게 만들어라(Make It Easy)"라고 합니다.

오늘 당장. 등록·상담 예약·서류 제출 과정에서 단계를 줄이세요(미리 채운 양식, 원클릭 예약). 그리고 반대로 점검하세요 — 우리 학원의 해지·환불·문의가 일부러 어렵게 돼 있진 않나요? 저자들은 그런 못된 마찰을 '슬러지'라 부르며 경고합니다.

3. "다들 이렇게 합니다"는 긴 설득보다 셉니다

영국이 세금 독촉장에 한 줄을 넣었습니다. "10명 중 9명은 제때 세금을 냅니다." 그러자 납부가 크게 늘었습니다. 사람은 "나 같은 사람들이 이미 그렇게 한다"는 사실 하나에 크게 움직입니다.

오늘 당장. "이번 학기 신규생의 80퍼센트가 ○○ 과정을 선택했어요" 같은 사실 그대로의 사회 규범 한 줄을 안내에 넣으세요. 단, 반드시 진짜 숫자여야 합니다. 거짓 규범은 그 자리에서 신뢰를 깹니다.

단, 이 책을 무기로 쓰려는 원장은 읽지 마세요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고객을 '가두려고'(해지를 일부러 어렵게, 자동결제 함정) 이 책을 집으셨다면, 이 책은 오히려 당신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저자들은 그런 슬러지를 가장 강하게 비판하니까요. 그들이 건 윤리 기준은 단순합니다 — "이 설계를 학부모에게 그대로 설명해도 떳떳한가?" 떳떳하지 않으면 그건 넛지가 아니라 조작입니다.

그리고 넛지는 만능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학습 격차 같은 큰 문제는 환경 설계 몇 개로 안 풀립니다. 저자들도 그 한계를 분명히 인정합니다.

읽고 나면 달라지는 한 줄 — 앤디의 렌즈

제가 옮긴 건 일부입니다. 월급 인상분에 저축을 슬쩍 끼워 넣어 저축률을 네 배로 올린 설계, 선택지를 너무 많이 줬다가 다들 손해 본 연금 이야기가 책에 가득합니다. 그건 직접 보시는 게 낫습니다.

저는 이렇게 읽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안 움직이면 "의지가 없다"고 탓합니다. 그런데 대개는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는 길에 작은 턱이 하나 있을 뿐입니다.

사람을 바꾸려 하지 마세요. 사람이 가는 길을 바꾸세요.

이번 주에 딱 하나만 해보십시오. 우리 학원에서 학부모를 가장 귀찮게 하는 '마찰' 한 가지를 찾아 없애는 겁니다. 등록 단계 하나든, 복잡한 양식 한 칸이든.


넛지: 파이널 에디션 — Nudge: The Final Edition
리처드 탈러 · 캐스 선스타인 저
원서 Penguin · 2021 (국내 번역본 별도)

"안 움직이는 건 의지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가는 길에 작은 턱이 하나 있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