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원장의 가장 위험한 순간은 확신할 때다

원장의 가장 위험한 순간은 모를 때가 아니라, 확신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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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신관은 무조건 됩니다. 옆 단지가 전부 우리 타깃이거든요." 확장을 앞둔 원장님의 목소리엔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6개월이면 자리 잡는다고 하셨지요. 실제로는 2년이 걸렸습니다. 강사 채용도, 야심 차게 만든 새 프로그램도 비슷합니다. 가장 자신 있던 결정이, 가장 크게 빗나갑니다. 왜 그럴까요.

확신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이야기의 매끄러움'에서 옵니다

대니얼 카너먼이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답을 줍니다. 우리의 확신은 내가 가진 정보의 양에서 오지 않습니다. 머릿속 이야기가 얼마나 매끄러운가에서 옵니다. 그래서 아는 게 적을수록 빈틈이 안 보여, 오히려 더 확신합니다.

카너먼은 이걸 "보이는 것이 전부다(쉽게 말하면, 눈앞에 그려진 한 가지 이야기가 세상의 전부인 줄 착각한다)"라고 불렀습니다. "옆 단지가 다 우리 타깃" 같은 그럴듯한 그림 하나가 그려지면, 우리 머리는 그걸로 끝냅니다. 정작 따져야 할 질문 — 그 단지 아이들이 이미 다니는 학원은 몇 곳인지, 신규 학원이 그 자리에서 2년을 버틸 확률은 얼마인지 — 은 아예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빠진 정보가 안 보이니, 확신만 매끄럽게 차오릅니다.

베테랑은 험한 절벽이 아니라 '익숙한 길'에서 넘어집니다

베테랑 등반가가 사고를 당하는 곳은 험한 절벽이 아니라고 합니다. "여긴 내가 수십 번 다녔어" 싶은 익숙한 길입니다. 잘 안다는 확신이 안전장치를 슬그머니 풀게 만들거든요.

원장의 큰 결정도 똑같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 앞에선 다들 조심합니다. 그런데 "이 동네는 내가 제일 잘 알아" 싶을 때, 외부 관점을 안 봅니다.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학원이 몇 곳이나 버텼는지, 그 숫자를 안 찾습니다. 강사 채용도 그렇습니다. "면접 때 느낌이 참 좋았어"라는 매끄러운 첫인상 하나가, 과거 재직 기간이나 약속 이행 같은 딱딱한 사실을 덮어 버립니다.

한 가지 더 무서운 착각이 있습니다. "지난번에 따끔하게 혼냈더니 성적이 올랐어. 역시 애들은 다그쳐야 해." 카너먼은 이걸 평균 회귀라고 부릅니다. 아주 못 본 시험 다음엔 대개 평소 실력으로 돌아오기 마련인데, 그 자연스러운 반등을 '내가 혼낸 덕분'이라고 인과로 착각하는 겁니다. 운의 출렁임을 내 실력으로 오해하면, 잘못된 지도법을 평생 붙들게 됩니다.

게다가, 맨 처음 본 숫자가 끝까지 따라붙습니다

확신을 흔드는 또 하나의 함정은 '첫 숫자'입니다. 카너먼은 한 실험에서 부동산 중개인들에게 같은 집을 보여 주되, 호가만 다르게 알려줬습니다. 전문가인 그들조차 호가가 높으면 감정가를 41퍼센트나 높게 매겼습니다. 더 무서운 건, 정작 본인들은 "나는 호가에 안 휘둘렸다"고 확신했다는 점입니다.

학원에도 똑같이 옵니다. 첫 상담에서 어머니가 "옆 학원은 18만 원이던데요" 한마디를 던지면, 그 숫자가 원장님 머릿속에 닻을 내립니다. 그날부터 우리 수강료를 그 18만 원에 견줘 깎을지 말지만 고민하게 되지요. 정작 따져야 할 '우리 수업의 진짜 가치'는 뒷전으로 밀립니다. 처음 들어온 숫자 하나가, 그 뒤의 모든 판단을 조용히 끌고 다니는 겁니다. 그러니 큰 협상이나 가격 결정 앞에선, 상대가 먼저 던진 숫자를 기준으로 삼지 말고 우리 쪽 기준을 따로 적어 두고 시작해야 합니다.

큰 결정 앞엔 '5분짜리 난간'을 세우십시오

그러니 큰 결정 앞에선 잣대를 하나 바꿔 보십시오. "내가 얼마나 확신하나"가 아니라, "내가 지금 너무 확신하는 건 아닌가". 확신이 강할수록 한 번 더 의심하는 겁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 먼저, 내 사례의 특별함을 말하기 전에 '바깥의 숫자'부터 봅니다. 비슷한 학원·비슷한 학생은 실제로 어땠는지를요.
  • 사람이나 사업을 '느낌 총평'으로 정하지 말고, 핵심 잣대 서너 개를 따로 점수 매겨 합산합니다.
  • 그리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딱 5분, "1년 뒤 이 결정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상상하고, 그 이유를 적어 보는" 겁니다. 평소 눌러뒀던 걱정들이 그제야 쏟아져 나옵니다. "신관 자리에 대형 프랜차이즈가 들어왔다", "믿고 뽑은 강사가 한 학기 만에 그만뒀다" 같은, 평소엔 입 밖에 내기 싫던 시나리오들이요. 신기하게도, 실패를 미리 상상하는 것만으로 사람은 빠진 구멍을 훨씬 잘 찾아냅니다.

원장님이 안 풀릴 때 흔히 하는 건 무언가를 '더하는' 일입니다. 전단지를 더하고, 프로그램을 더하고, 확신을 더하지요. 그런데 정작 필요한 건 더하기가 아니라, 멈춰서 다시 묻는 일입니다. "이게 정말 될까. 비슷한 경우는 어땠지?"

단, 모든 결정에 이러진 마십시오

오해는 마세요. 매일의 작은 결정까지 이렇게 따지면 아무 일도 못 합니다. 그런 일상에선 빠른 직관이 대개 옳습니다. 이 5분짜리 난간은 개원·확장·고액 투자·강사 채용처럼 한 번 정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 앞에서만 꺼내면 됩니다. 그리고 이건 똑똑함의 문제도 아닙니다. 똑똑한 원장일수록 자기 이야기가 더 매끄러워서 더 잘 속거든요. 그래서 머리가 아니라 '절차'가 우리를 지킵니다.

"원장의 가장 위험한 순간은 모를 때가 아니라, 확신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