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AI를 두고 같은 질문을 합니다. "이게 내 일을 대신하게 될까." 그런데 이 책은 그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말합니다.
저는 ChatGPT를 처음 켰을 때, 솔직히 시험을 보듯 다뤘습니다. 어려운 걸 던지고, 틀린 답이 나오면 "거봐, 아직 멀었네" 하고 창을 닫았습니다. 게티스버그 연설의 다섯 번째 문장을 물었더니 엉뚱한 문장을 자신 있게 대더군요. 저는 그걸 보고 안심했습니다. AI는 아직 멍청하다, 내 자리를 위협할 물건이 못 된다. 그렇게 한동안 손을 놓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저는 도구를 시험하느라 정작 그 도구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한 번도 묻지 않았던 겁니다.
『임프롬투(Impromptu)』를 집은 건 그 게으른 안심이 슬슬 불안으로 바뀌던 무렵이었습니다. 학원 업무에 AI를 붙여보려는데, 무엇부터 어떻게 시켜야 할지 감이 없었습니다. 안내문을 대신 써달라고 하면 밋밋했고, 상담 시나리오를 부탁하면 교과서 같은 말만 늘어놓았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AI에게 이렇게 명령하면 좋은 답이 나온다"는 비법을 기대했습니다. 제가 발견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 책은 좋은 답을 받는 법이 아니라, 답을 받으려는 태도 자체를 버리는 법을 적은 책이었습니다.
저자가 누구인지부터 이 책은 보통이 아닙니다. 리드 호프먼은 링크드인을 만든 사람이고, OpenAI의 초기 투자자입니다. AI가 세상에 풀리기 직전, 가장 안쪽에서 그 풍경을 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가 택한 글쓰기 방식이 더 흥미롭습니다. 그는 GPT-4를 공동 저자로 올렸습니다. 책 곳곳에 "Reid:"라고 그가 묻고 "GPT-4:"라고 기계가 답한 실제 대화 기록이 그대로 박혀 있습니다. AI를 논하는 책이 아니라, AI와 함께 쓴 책을 그대로 보여주는 겁니다. 추상적인 미래 담론으로 겁을 주는 대신, "내가 이렇게 같이 써봤더니 이런 풍경이더라" 하고 1인칭으로 데려갑니다. 이 형식 하나가 책의 주장을 증명합니다.
그 주장의 핵심은 제목에 다 들어 있습니다. AI는 우리를 대체(replace)하는 게 아니라 증폭(amplify)한다는 것. 호프먼은 GPT-4를 "뇌를 위한 12-in-1 멀티툴"이라고 부릅니다. 몇 년 안에 이 도구는 대다수 전문직에게 스마트폰만큼 당연한 물건이 되고, 안 쓰는 사람은 "더 느리고 덜 정확하게, 큰 불리함 속에서" 일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이 책이 같은 시기 쏟아진 AI 책들과 갈라집니다. 한쪽은 "AI가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공포로 채워졌고, 다른 한쪽은 "프롬프트를 이렇게 짜면 답을 잘 뽑는다"는 기술서였습니다. 이 책은 둘 다 아닙니다. 위협도 비법도 아닌, 도구를 대하는 태도를 다룹니다.
그 태도가 7장에 세 줄로 압축돼 있습니다. 호프먼이 GPT-4를 쓰며 깨달은 세 가지 원칙입니다.
첫째, AI를 전지전능한 신탁이 아니라 학부 연구조교로 다루라는 것. 지식은 넓고 빠르지만 얕고, 자신 없을 때도 경고하지 않고 그럴듯하게 틀립니다. 그러니 늘 다른 출처와 교차 검증해야 합니다. 둘째, 목수가 아니라 감독처럼 생각하라는 것. 망치는 휘두를 때마다 똑같은 결과를 내지만, AI는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 감독이 배우에게 "목을 15도 굽혀라"가 아니라 "사랑에 빠진 걸 설득해보라"고 말하듯, 원하는 결과를 끌어내야 하는 협업이라는 겁니다. 셋째, 그냥 해보라는 것. 우리는 "두 번 재고 한 번 잘라라"라고 배웠지만, AI 앞에서는 계획을 두고 논쟁하는 것보다 일단 시켜보는 게 더 싸고 빠릅니다. 마음에 안 들면 버리고 다시 받으면 그만이니까요.
이 세 원칙을 읽다가 저는 멈췄습니다. 제가 ChatGPT를 닫았던 그날의 실수가 정확히 여기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AI를 신탁으로 다뤘습니다. 한 번에 완벽한 답을 내놓길 바랐고, 안 그러니까 무능하다고 판정하고 돌아섰습니다. 호프먼이 끌어온 한 TV 작가의 말이 이 차이를 정확히 찌릅니다. 그 작가는 GPT-4에게 반전 있는 장면을 써달라고 했더니 처음엔 "웃길 정도로 형편없는" 대사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뻔하지 않게 비틀어보라"고 방향을 주자, 결국 쓸 만한 반전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작가의 결론이 이렇습니다. "GPT-4는 내 트러플 돼지다. 내가 도와준 다음에야 나를 도와줬다." 단서를 파주는 돼지이지, 요리를 대신 해주는 요리사가 아니라는 거죠.
여기서 저는 제 일터의 풍경 하나가 겹쳐 보였습니다. 15년간 상담실에 앉아 있으면서 제가 배운 게 하나 있습니다. 좋은 상담은 학부모에게 답을 던지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 "우리 학원이 최고입니다"라고 답을 내놓는 원장보다, "어머니, 그런데 아이가 정작 어디서 막힌다고 느끼세요?"라고 되묻는 원장이 결국 등록을 받습니다. 답을 파는 사람과, 상대 안에서 답을 같이 캐내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호프먼이 AI에게 하라는 게 정확히 후자였습니다. 신탁에게 답을 받아오는 게 아니라, 조교에게 일을 시키고 감독처럼 방향을 잡아 결과를 끌어내는 것. 기계를 다루는 법인 줄 알았는데, 사람을 다루는 법과 똑같았습니다.
그러니 이 책이 원장에게 건네는 진짜 선물은 AI 활용 팁이 아닙니다. 학원을 보는 렌즈 하나를 바꿔줍니다. 그동안 우리는 AI를 "강사를 줄여줄 물건인가, 아니면 우리 일을 위협할 물건인가"로 저울질했습니다. 둘 다 AI를 답을 내는 기계로 본 질문입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질문이 바뀝니다. "이 도구로 나는 어떤 그런트 워크를 넘길 수 있고, 그래서 비워진 시간에 나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호프먼은 일자리가 통째로 사라지기보다 일의 내용이 재편된다고 봅니다. 시간을 잡아먹는 반복 작업은 AI에게 넘기고, 사람은 관계를 쌓고 감정의 신호를 읽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는 겁니다. 영업이든 법률이든 컨설팅이든 공통 공식은 하나였습니다. 그런트 워크는 AI에게, 인간은 AI가 못 하는 것에. 학원으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안내문 초안, 시험 범위 정리, 오답 유형 분류 같은 일은 조교에게 시키고, 원장은 아이의 눈빛을 읽고 학부모의 불안을 듣는 자리에 더 오래 앉는 겁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장밋빛만 칠하지는 않습니다. 호프먼이 끝까지 답을 못 낸 딜레마가 하나 있습니다. 견습의 소멸입니다. 신입 분석가는 지루한 잡일을 하며 실력을 길렀는데, 그 잡일을 AI가 가져가면 다음 세대는 무엇으로 배우느냐는 물음입니다. 그는 AI 시뮬레이션과 가상 멘토링으로 메울 수 있을지 모른다고 조심스레 답하지만, 확신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오래 멈췄습니다. 우리 학원의 신입 강사가 정확히 그렇게 큽니다. 채점하고 교재 정리하고 학부모 문자 초안 쓰는 허드렛일을 거치며 현장을 익힙니다. 그 허드렛일을 AI에게 다 넘기면, 신입 강사는 무엇으로 성장할까요. 이건 이 책도 답을 못 준 질문입니다. 다만 호프먼은 정직하게 그 빈칸을 빈칸으로 남겨둡니다. 답을 아는 척하지 않는 책이라, 오히려 믿음이 갔습니다.
이 책에는 제가 여기서 풀지 않은 결도 많습니다. AI가 그럴듯하게 틀리는 환각이 왜 생기는지, AI 시대에 인간이 지킬 세 가지 역량이 무엇인지, 학력이라는 종이 천장을 AI가 어떻게 찢는지. 그 장들은 직접 펴보실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다만 제가 책장을 덮으며 가장 오래 손에 쥔 한 줄만 옮겨두겠습니다. AI에게 답을 시키는 사람은 실망하고, AI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은 증폭됩니다. 같은 도구를 쥐고도 한 사람은 위협을 보고, 한 사람은 부선장을 봅니다.
저는 그날 닫았던 창을 다시 열었습니다. 이번엔 시험을 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일을 시켰습니다. "이번 주 신규 상담 세 건 메모를 줄 테니, 학부모가 진짜 걱정하는 게 뭔지 후보를 다섯 개만 뽑아봐." 형편없는 후보도 섞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제가 미처 못 본 신호를 짚었습니다. 트러플 돼지가 땅을 판 자리에서, 결국 캐낸 건 저였습니다.
책 정보 제목: Impromptu: Amplifying Our Humanity Through AI 저자: Reid Hoffman (with GPT-4) 출판사: Dallepedia LLC 발행연도: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