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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교육·학습설계2026.06.2413분 읽기


상담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있습니다.

"원장님, 고교학점제 되면 우리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저는 한동안 이 질문에 뉴스로 답했습니다. 교육부가 며칠에 무엇을 발표했고, 몇 년부터 무엇이 바뀌고, 등급제가 어떻게 달라진다더라. 학부모는 고개를 끄덕였고, 저도 답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상담이 끝나고 나면 늘 같은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정작 "그래서 우리 아이가 지망하는 그 고등학교는 어떤데요?"에는 한마디도 못 한 겁니다. 저는 나라 전체의 제도를 설명했지, 그 집 아이가 갈 학교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피상훈 소장의 고교학점제 강의 정리를 처음 펼친 건 그 빈자리 때문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정책 요약이려니 했습니다. 2022 개정교육과정 총론, 단계적 이행, 성취평가제 6단계, 익숙한 단어들이 줄지어 나오니까요. 그런데 강의 한가운데에서 저는 제가 찾던 답이 아니라, 전혀 다른 문장 하나에 멈췄습니다.

"교육과정 편성표를 직접 읽어라. 학교알리미에서."

별것 아닌 말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 한 줄이 제가 몇 년간 학부모에게 해 온 설명의 방향을 통째로 뒤집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위에서 내려오는 발표를 받아 전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발표는 늦고, 추상적이고, 모든 학교에 똑같이 적용되는 평균값이었습니다. 그런데 소장이 가리킨 곳은 위가 아니라 아래였습니다. 학교알리미에 이미 올라와 있는, 우리 동네 그 고등학교의 교육과정 편성표 한 장. 그 종이가 발표보다 먼저, 그리고 그 학교에 한해서는 발표보다 정확하게, 아이의 3년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나라 전체의 제도를 설명했지, 정작 그 집 아이가 갈 학교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소장의 강의가 보통의 정책 브리핑과 갈라집니다. 시중에 도는 고교학점제 설명은 대부분 "제도가 어떻게 바뀌는가"를 다룹니다. 등급제가 9등급에서 성취평가로 간다, 단위가 학점으로 바뀐다, 졸업 기준이 달라진다. 다 맞는 말이지만, 이건 떠도는 전언입니다. 누군가 발표를 요약했고, 그 요약을 또 요약한 말이 학원가를 돕니다. 소장이 가르치는 건 요약을 외우는 법이 아니라, 당사자가 직접 써 둔 원문을 읽는 법입니다. 편성표는 그 학교가 자기 손으로 작성한 친서입니다. 전언과 친서의 차이가, 이 강의와 흔한 정책 설명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소장은 그 친서를 어떻게 읽는지까지 손에 쥐여 줍니다. 강의에 정리된 네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학교알리미에서 편성표를 구한다. 둘째, 고민의 시기를 1년 당긴다. 셋째, 학교설명회에 직접 가 본다. 넷째, 그 학교 교육과정의 허실을 구분한다. 이 가운데 저를 가장 오래 붙든 건 두 번째였습니다.

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육과정 편성표는 해마다 극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올해 고1의 편성표로 지금 중3을 가르칠 수 있다. 읽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너무 단순한데, 저는 왜 이걸 한 번도 안 해 봤을까. 우리는 늘 "내년에 바뀐다더라"를 기다립니다.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한 학년을 그냥 흘려보냅니다. 그런데 소장은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답안지는 이미 작년에 그 학교가 공개해 뒀으니까요.

답안지는 이미 작년에 그 학교가 공개해 뒀습니다. 우리는 발표를 기다리느라 그걸 안 읽었을 뿐입니다.

물론 이 강의가 모든 걸 떠먹여 주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원문은 강의를 받아 적은 메모라 거칠고 군데군데 비어 있습니다. 대입 제도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묻는 대목은 질문만 적혀 있고 답이 없습니다. 2025년 적용과 2023~24년 적용이 어떻게 다른지도 제목만 있고 본문이 비었습니다. 학점 수가 줄어든다는 수치, 졸업 인정 비율, 성취평가 단계 수 같은 숫자들도 강의 시점의 기록이라 지금 그대로 믿고 학부모에게 옮기면 위험합니다. 제도는 발표 때마다 조금씩 손을 봅니다. 그래서 이 강의는 정답집이 아닙니다. 숫자를 외우려고 읽으면 오히려 헛디딥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이 강의의 진짜 값어치를 거꾸로 증명합니다. 숫자는 바뀌지만 읽는 법은 안 바뀝니다. 소장이 가르치는 건 올해의 정답이 아니라, 매년 달라지는 정답을 스스로 찾아 읽는 법입니다. 그래서 강의가 거칠수록, 저는 더 신뢰가 갔습니다. 외울 것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눈을 주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 눈으로 보면 좋은 고등학교를 가르는 기준도 달라집니다. 소장은 편성표에서 두 가지를 보라고 합니다. 하나는 학교가 지정한 이수 비중과 학생이 고르는 이수 비중의 비율입니다. 학생이 고르는 칸이 넓을수록 그 학교는 공격적으로 학점제를 굴리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다른 하나는 학기제 편성이냐 학년제 편성이냐입니다. 한 과목을 1년 내내 펴는 학교가 있고, 학기마다 물리1, 물리2, 심화로 쪼개 빌드업하는 학교가 있습니다. 소장은 학기제로 잘게 쪼개 깊이 파는 편성이 학점제와 어울린다고 봅니다. 같은 '일반고'라는 이름표를 달고도, 편성표를 펴면 두 학교는 전혀 다른 학교였던 겁니다.

여기까지가 학부모에게 건넬 이야기라면, 원장에게 이 강의가 던지는 질문은 한 겹 더 깊습니다. 성취평가제로 가면, 영어학원도 수학학원도 한 번쯤 같은 불안을 품습니다. 점수로 줄을 안 세운다는데, 그럼 우리 학원은 필요 없어지는 것 아닌가. 소장의 답은 학원의 일을 점수 만드는 곳에서 탐구거리 만드는 곳으로 옮겨 놓습니다. 성취평가 시대에 키워야 할 것은 시험 점수가 아니라 과제탐구이고, 아이에게 지식을 써먹을 곳을 찾아 줘야 한다는 겁니다. 시험에 쓰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파고들 무언가를 손에 쥐여 주는 일. 이건 단순한 영업 팁이 아니라, 학원이 자기 존재 이유를 다시 적는 문장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제 학원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학원을 '점수를 올려 주는 곳'이라고 정의해 왔습니다. 그 정의 위에서는 성취평가제가 위협입니다. 줄 세우기가 약해질수록 점수 장사가 약해지니까요. 그런데 정의를 바꾸면 같은 변화가 기회가 됩니다. 학원이 '아이가 파고들 거리를 찾아 주는 곳'이라면, 성취평가제는 오히려 우리 편입니다. 점수 경쟁이 느슨해진 자리에 탐구의 깊이가 들어설 자리가 생기니까요. 같은 정책 앞에서 어떤 원장은 위협을 보고 어떤 원장은 빈자리를 봅니다. 그 차이는 정책이 아니라, 원장이 자기 학원을 무엇이라 정의했느냐에서 갈립니다.

이 한 가지가 이 강의에서 제가 건진 가장 큰 선물입니다. 제도를 좇느라 바빴는데, 정작 바꿔야 할 건 제도를 보는 제 자세였습니다. 발표를 기다리던 사람에서, 편성표를 직접 펴는 사람으로. 점수를 파는 곳에서, 탐구를 여는 곳으로.

당장 오늘 하나만 해 보겠습니다. 우리 학원 학생들이 가장 많이 가는 그 고등학교의 이름을 학교알리미에 쳐 보는 것. 그리고 올해 고1의 교육과정 편성표를 내려받아, 학기제인지 학년제인지, 학생 선택 칸이 얼마나 넓은지 그 한 장을 끝까지 읽어 보는 것. 발표를 기다리는 대신 말입니다.

정책은 뉴스로 오지 않습니다. 우리 동네 그 고등학교의 교육과정 편성표 한 장으로, 1년 먼저 와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그걸 안 펴 봤을 뿐입니다.


제목: 고교학점제 실마리 강의 (강의 정리 노트) 강연: 피상훈 소장 토대: 2022 개정교육과정 총론 형태: 강의를 받아 적은 정리 노트 — 수치·연도·적용 시점은 발표 시점에 따라 달라지므로 실제 적용 시 교육부 발표 원전 확인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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