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동안 마케팅을 돈 쓰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블로그를 했다가 멈추고, 전단을 돌렸다가 그만두고, 누가 인스타가 된다고 하면 인스타를 켜고, 또 누가 요즘은 유튜브라고 하면 카메라를 샀습니다. 매번 새로 시작했고 매번 며칠 만에 시들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마케팅에 소질이 없는 사람이구나. 글재주도, 끈기도 없으니까.
그게 소질의 문제가 아니라 순서의 문제였다는 걸,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앨런 딥은 호주의 연쇄 창업가입니다. 통신 스타트업으로 호주의 고속성장 100대 기업에 든 사람인데, 흥미로운 건 그가 이 책을 쓴 계기입니다. 그는 한때 수백 페이지짜리 사업계획서를 썼다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아무도 읽지 않았고, 무엇보다 본인이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거꾸로 갔습니다. 80:20 법칙을 마케팅에 들이대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고 다 버렸더니, 마케팅 계획이 딱 한 페이지로 줄었습니다. 그 한 페이지가 이 책입니다.
저는 처음에 또 하나의 마케팅 꿀팁 모음일 거라 기대하고 책을 폈습니다. 어떤 후킹 멘트가 먹히는지, 어떤 채널이 요즘 뜨는지 알려주는 책. 그런데 제가 발견한 건 정반대였습니다. 이 책의 첫 메시지는 **"전술부터 묻지 마라"**였습니다.
딥은 그것을 '반짝이는 물건 증후군'이라고 부릅니다. 전략 없이 인스타·유튜브·블로그 같은 전술만 쫓아다니는 상태. 제가 딱 그거였습니다. 저는 "어떤 매체가 좋을까"부터 물었는데, 딥은 그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합니다. 매체는 다섯 번째 칸입니다. 그 앞에 누구에게(표적고객), 뭐라고(메시지) 말할지가 먼저 와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원장님들이 가장 뜨끔할 한 문장이 나옵니다. "모두를 노리면 아무도 못 잡는다." 딥은 표적고객을 폭 1인치, 깊이 1마일로 좁히라고 합니다. 초등 전 과목, 중등 내신, 고등 정시까지 다 받는 학원은 사실 누구의 학원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걸 읽으며 오래전 한 원장님이 떠올랐습니다. 그분은 "수학을 못하는 게 아니라 수학이 무서운 아이"만 받겠다고 했습니다. 주변에서 손님을 왜 줄이냐고 말렸습니다. 그런데 3년 뒤, 그 동네에서 '수포자 보내는 곳'은 그 학원 하나뿐이었습니다. 가격 경쟁도 사라졌습니다. 비교 대상이 없는 곳에는 깎아달라는 말이 안 나오니까요.
여기까지가 이 책과 다른 마케팅 책의 갈림길입니다. 시중의 마케팅 책 상당수가 **"어떻게 더 잘 알릴까"**를 다룬다면, 이 책은 **"어떻게 측정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까"**를 다룹니다. 딥이 거듭 강조하는 건 영세사업은 대기업의 매스 마케팅, 즉 회사 이름 알리기를 흉내 내면 안 된다는 겁니다. 코카콜라처럼 멋진 브랜드 광고를 하다가는 돈만 태우고 끝납니다. 대신 1달러를 써서 1달러 넘게 회수됐는지 추적되는 직접 반응 마케팅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광고 한 번에 효과를 따질 수 있어야, 효과 있는 광고에는 예산을 무제한 쏟을 수 있게 됩니다. 딥은 그걸 "돈을 할인가에 사는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인용하고 싶어지는 문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어깨를 정말 내려가게 한 건 다른 대목이었습니다.
딥은 광고로 바로 팔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어느 시장이든 지금 당장 살 사람은 3%뿐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광고는 그 3%만 노립니다. 나머지 97%, 관심은 있지만 아직 때가 아닌 사람들을 그냥 흘려보냅니다. 딥은 사냥꾼이 되지 말고 농부가 되라고 합니다. 광고로 당장 팔지 말고, 관심 있는 사람의 연락처를 먼저 얻어(그는 이걸 무료 자료 같은 '윤리적 뇌물'로 손들게 한다고 표현합니다) 천천히 신뢰를 키우라는 겁니다.
이 문장을 읽고 저는 제 지난 실패가 다시 보였습니다. 저는 블로그를 며칠 하다 멈출 때마다 "반응이 없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글 하나 올리고 그 자리에서 등록 전화가 오길 바랐던 겁니다. 그건 사냥이었습니다. 당장 살 3%에게 거절당하고는 끈기가 없다고 자책한 거죠. 저는 끈기가 없었던 게 아니라, 농사를 사냥인 줄 알고 했던 겁니다. 씨를 뿌린 다음 날 열매가 안 열렸다고 밭을 갈아엎은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원장님께 이 책이 주는 진짜 선물은 여기 있다고 봅니다. 마케팅을 이벤트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다시 보게 하는 것. 이벤트는 한 번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이고, 시스템은 표적고객부터 추천까지 아홉 칸이 한 번 만들어지면 나 없이도 돌아가는 구조입니다. 이렇게 보면 마케팅이 '센스 있는 사람만 하는 일'에서 '누구나 한 칸씩 채우면 되는 일'로 바뀝니다. 글재주가 없어도, 말주변이 없어도 됩니다. 칸을 채우는 데는 재능이 아니라 순서만 있으면 되니까요.
물론 한계도 있습니다. 이 책은 호주·미국의 직접 반응 마케팅을 바탕으로 쓰여서, 전통 우편(DM)이나 일부 사례는 우리 학원 현장에 그대로 옮기기 어렵습니다. 9칸을 다 채우는 일도 책장을 덮는 순간 만만치 않게 느껴집니다. 다만 딥 자신이 끝에서 못을 박습니다. "알고도 안 하면 모르는 것과 같다." 그는 완벽한 계획보다 오늘 한 칸이라도 채우는 실행을 택하라고 합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책 바깥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예전에 백발의 노인이 서핑 보드를 들고 바다로 걸어가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챔피언이 아니었습니다. 폼이 멋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계속 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모습을 보고 "나도 해볼까" 싶었습니다.
마케팅도 똑같다는 걸 이 책이 알려줬습니다. 원장님을 따라 등록하는 학부모는 가장 화려한 광고를 본 게 아닙니다. 멈추지 않고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본 겁니다. 한 번 크게 터뜨리는 게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어 계속 손드는 것. 그 꾸준함 자체가 "이 학원 믿을 만하다"는 메시지가 됩니다.
저는 이 책을 덮고 나서, 다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종이 한 장을 꺼내 아홉 칸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첫 칸, 누구를 위한 곳인가부터 다시 적었습니다. 새 채널을 켜는 대신 순서를 바로잡은 겁니다. 신기하게도, 이번엔 며칠 만에 시들해지지 않았습니다.
1페이지 마케팅 플랜 / The 1-Page Marketing Plan / 앨런 딥 저 / 홍석윤 역 / 알파미디어 /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