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YWIKI
← 칼럼
독서노트북노트2026.06.1610분 읽기

자기다움을 깎지 않으면서 세련되어지는 것

상담을 잘하는 원장은 잘 깎아주는 원장이라고들 합니다.

저도 한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학부모가 "좀 비싸네요"라고 하면 형제 할인, 조기 등록 할인, 교재비 면제 같은 카드를 순서대로 꺼냈습니다. 상대가 만족한 얼굴로 돌아가면 상담을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반복됐습니다. 가장 많이 깎아준 학부모가 가장 먼저 나갔습니다. 그리고 깎아준 만큼 더 까다로워졌습니다. 정성껏 양보했는데 관계는 더 얇아졌습니다.

이 책을 집은 건 그 때문이었습니다. 협상 기술을 한 수 배우면 상담에서 덜 끌려다닐 줄 알았습니다. 변호사가 쓴 책이니 상대를 제압하는 화법이라도 정리돼 있겠거니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더 세련되게 이기는 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찾은 것은 정반대였습니다.

류재언 변호사는 기업 분쟁과 계약 협상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스타벅스에서 협상을 강의했고 하버드 로스쿨 협상 프로그램을 수료했습니다. 협상으로 밥을 먹는 사람이 책 한 권을 끌고 가서 도착한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협상은 상대를 이겨 더 뜯어내는 기술이 아니라, '결과물'과 '인간관계' 두 가지를 동시에 남기는 행위다. 둘 다 만족시켜야 성공한 협상이고, 한쪽을 위해 다른 쪽을 버리면 그건 이긴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멈춰 선 자리는 흥정과 협상을 가르는 대목이었습니다. 흥정은 가격이라는 한 변수를 두고 다투는 제로섬 게임입니다. 내가 깎으면 상대가 이득이고, 상대가 양보하면 내가 이득인 외나무다리입니다. 반면 협상은 둘 이상의 조건을 테이블에 올려 서로 만족하는 합의를 만드는 가치 창출 게임입니다. 제가 그동안 한 것은 협상이 아니라 흥정이었습니다. 수강료라는 한 숫자만 붙들고 그걸 깎느냐 마느냐로 모든 상담을 끌고 갔으니까요. 변수가 하나뿐인 게임에서는, 깎아주는 것 말고는 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저자가 이 지점에서 던지는 진짜 한 수는 따로 있습니다. 요구가 아니라 욕구를 보라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요구는 빙산의 일각이고, 그 아래 진짜 욕구가 잠겨 있다는 겁니다. "좀 비싸네요"라는 말은 요구입니다. 그 아래 욕구는 제각각입니다. 어떤 학부모는 정말 돈이 빠듯하고, 어떤 학부모는 이 돈을 쓸 만한지 확신이 필요하고, 어떤 학부모는 다른 집은 얼마 내는지 기준을 갖고 싶어 합니다. 세 사람에게 똑같이 할인 카드를 꺼내는 건, 세 사람의 다른 질문에 같은 오답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돈이 빠듯한 사람에게는 할인이 맞습니다. 그러나 확신이 필요한 사람에게 할인을 내밀면, 그 사람은 속으로 이렇게 읽습니다. "깎아줄 정도면 원래 거품이었구나."

여기서 이 책이 흔한 협상서와 갈라집니다. 서점의 협상 책들이 대개 '상대를 읽고 제압하는 화술 모음집'이라면, 이 책은 마지막 장에서 기술을 스스로 내려놓습니다. 저자는 와튼스쿨 다이아몬드 교수의 연구를 인용합니다. 합의를 이끄는 요인 중 전문 지식과 계약 내용은 8%, 절차가 37%, 그리고 **사람에 대한 신뢰와 호감과 감정이 55%**라는 겁니다. 협상의 절반 이상이 기술 바깥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노련한 상대가 쓰는 앵커링, 굿캅 배드캅, 침묵 같은 열 가지 전략을 부록에 모아두면서도, 그걸 '내가 휘두를 무기'가 아니라 '상대가 나에게 쓸 때 알아채는 용도'로 배치합니다. 변호사가 쓴 협상서의 결론이 "결국 사람으로 귀결된다"라는 것. 저는 이 반전이 좋았습니다. 분쟁의 최전선에서 협상으로 먹고사는 사람만이, 기술의 한계를 정확히 압니다.

그러니 깎아주는 원장이 등록을 놓치는 이유가 설명됩니다. 할인은 결과물(가격) 한쪽만 건드리고 관계는 오히려 깎아냅니다. 양보가 클수록 상대는 내 가격을, 더 나아가 내 교육을 의심합니다. 8%짜리 카드를 꺼내느라 55%짜리 자산을 흘리고 있었던 겁니다.

여기서 제가 현장에서만 본 것을 하나 보태고 싶습니다. 15년간 상담을 하며 깨달은 건, 끝까지 깎아달라고 조르는 학부모와 한 번도 가격을 입에 올리지 않는 학부모 중에, 오래 남는 쪽은 후자였다는 사실입니다. 가격을 깎는 데 에너지를 쓰는 학부모는, 등록한 뒤에도 받은 만큼 본전을 뽑으려 합니다. 반대로 "이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알아주는가"를 보고 들어온 학부모는, 작은 불편은 넘어가 줍니다. 책에서 말하는 결과물과 관계의 차이를, 저는 등록 두 달 뒤의 표정에서 봤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원장에게 주는 진짜 선물은 화법이 아니라 관점의 교체입니다. 상담을 '얼마나 깎아줄까'의 자리에서 '어떤 합의와 관계를 함께 남길까'의 자리로 옮기는 것. 트렌드를 따라 새 할인 정책을 매년 바꾸는 학원이 아니라, 가격을 흔들지 않으면서도 학부모가 신뢰를 들고 돌아가게 만드는 학원. 자기다움을 깎지 않으면서 세련되어지는 것, 저는 그게 협상이자 브랜드라고 읽었습니다.

혹시 지금 상담에서 자꾸 끌려다니고 할인 카드만 늘어간다고 느낀다면, 그건 원장님의 화술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변수가 하나뿐인 게임을 하고 있어서입니다. 게임의 판을 바꾸면 됩니다.

이 책에는 배트나(협상 결렬 시의 대안), 조파(합의 가능 영역), 숨은 이해관계인 같은 개념도 있습니다. 협상력이 말솜씨가 아니라 '대안의 유무'에서 나온다는 대목은, 을의 자리에서 상담하는 원장에게 특히 날카롭게 닿습니다. 다만 그 카드들은 각자의 상담 테이블에서 직접 펼쳐볼 때 제 몫을 합니다.

저는 이 책을 덮고 나서 할인 카드를 한 장 줄였습니다. 대신 상담 앞머리에 질문 하나를 넣었습니다. "어떤 점이 가장 고민되세요?" 깎을 준비 대신, 진짜 욕구를 들을 준비를 한 것입니다. 그 작은 순서를 바꾸고 나서, 상담이 흥정에서 대화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류재언 변호사의 협상 바이블 / (국내 저작) / 류재언 저 / 한스미디어 /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