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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북노트2026.06.1611분 읽기

입니다. 정리된 교훈은 다른 데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권력의 정점에 선 사람이 매일 밤 자기 약함과 싸운 흔적은 이 책에만 있습니다.

저는 멘탈이 강한 사람이 따로 있다고 믿었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차에 앉아 있던 어느 저녁이 떠오릅니다. 그날은 별일이 없었습니다. 등록을 망설이던 학부모 한 분이 끝내 다른 학원으로 갔고, 한 강사는 그만두겠다고 했고, 단톡방에는 답하기 애매한 메시지가 하나 떠 있었습니다. 하나하나는 작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는 운전대를 잡은 채 한참을 못 움직였습니다. 마음이 외부의 모든 사건에 그대로 연결되어 있어서, 누가 한마디 하면 그 한마디가 제 하루 전체를 물들였습니다. 저는 제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은 강철 멘탈을 타고난 거고, 나는 아니라고.

『명상록』을 집어 든 건 그 무렵이었습니다. 솔직히 기대는 크지 않았습니다. 2천 년 전 로마 황제가 쓴 철학책이라니, 고상한 잠언 몇 줄 읽고 "역시 명문장이군" 하고 덮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펼치자마자 당황했습니다. 이건 잠언집이 아니라 일기였습니다. 그것도 출판할 생각이 전혀 없던, 순전히 자기 자신에게만 들려주려고 쓴 비망록이었습니다. 원래 제목부터가 『그 자신에게』입니다. '명상록'이라는 이름은 17세기에야 붙었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게르만족과 전쟁을 치르던 도나우 강 북부 전선에서, 죽기 전 10년 동안 틈틈이 이 글을 적었습니다. 로마 5현제의 마지막 황제, 당대 가장 큰 권력을 쥔 사람이 매일 밤 천막 안에서 자기 마음을 다잡으려 끄적인 메모. 그게 이 책의 정체였습니다.

제가 발견한 것은 명문장이 아니라 반복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같은 말이 지겹도록 되풀이됩니다.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나눠라. 남의 평가는 네 것이 아니다. 죽음은 자연의 한 과정일 뿐이다. 처음엔 편집이 안 된 책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 사람은 한 번 깨달아서 끝낸 게 아니라, 매일 다시 깨달아야 했던 겁니다. 황제도 어제 다잡은 마음이 오늘 아침이면 또 풀려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또 적고, 또 적었습니다.

여기서 제 오해가 깨졌습니다. 마르쿠스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어서 이 글을 쓴 게 아닙니다. 흔들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매일 썼습니다. 강철 멘탈을 타고난 황제가 자기 경지를 기록한 책이 아니라, 자꾸 무너지는 한 인간이 무너질 때마다 자신을 일으켜 세운 운동 기록이었습니다.

이 대목이 제가 오래 믿어온 한 가지를 정면으로 건드렸습니다. 저는 긍정적이고 단단한 마음이 타고나는 성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스토아 철학의 핵심은 정반대입니다. 평정심은 기질이 아니라 훈련의 결과라는 겁니다. 마르쿠스가 따른 노예 출신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이 그 뿌리입니다. 마음의 평화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매일 같은 원리를 자신에게 되새기는 연습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운동선수가 같은 동작을 수천 번 반복하듯이.

여기에 이 책의 가장 실용적인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마르쿠스는 하루를 시작하기 전 이렇게 미리 새깁니다. "오늘 나는 간섭하기 좋아하고, 은혜를 모르고, 무례한 사람을 만날 것이다." 비관처럼 들리지만 정반대입니다. 까다로운 사람을 미리 예상해두면, 막상 닥쳤을 때 흔들리지 않습니다. 기대가 없으니 배신감도 없습니다. 저는 이걸 읽고 그 운전대 앞의 저녁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제가 무너진 건 사건이 컸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게 매끄럽게 흘러갈 거라 막연히 기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원장님이라면 이 지점에서 자신을 탓하기 쉽습니다. 작은 일에 휘둘리는 내가 그릇이 작은 건 아닐까, 사장이라는 사람이 이 정도도 못 다스리나.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알려준 재구성은 이겁니다. 흔들리는 것은 당신의 결함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값입니다. 로마 황제조차 매일 같은 다짐을 다시 적어야 했습니다. 문제는 흔들리느냐가 아니라, 흔들린 뒤에 자신을 일으키는 연습을 해뒀느냐입니다.

여기서 원장님께 한 가지 관점을 바꿔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보통 멘탈 관리를 '타고난 그릇'의 문제로 봅니다. 그런데 스토아식으로 보면 그것은 운영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등록 거절, 강사 퇴사, 학부모 컴플레인은 학원을 하는 한 매주 반복되는 날씨 같은 것입니다. 날씨에 매번 새로 상처받는 게 아니라, 비 올 걸 알고 우산을 챙기듯 미리 새겨두는 것. 평정심을 성격이 아니라 매일 돌리는 루틴으로 바꾸는 순간, 학원 운영은 감정 소모전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일이 됩니다. 제가 15년간 본 오래가는 원장님들의 공통점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분들이 둔감해서 안 흔들린 게 아닙니다. 흔들린 뒤 복구하는 자기만의 절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원장님은 항의 전화를 끊고 나면 무조건 자리에서 일어나 정수기까지 걸어가 물 한 잔을 받아 마신 뒤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그 30초가 다음 일에 감정을 묻히지 않는 자기만의 요새였던 셈입니다.

같은 주제를 다룬 책으로 라이언 홀리데이의 현대 스토아 자기계발서들이 많이 읽힙니다. 그런 책들이 스토아 철학을 잘 정리한 사용 설명서라면, 『명상록』은 그 원리가 실제 한 인간의 삶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날것의 현장 일지입니다. 정리된 교훈은 다른 데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권력의 정점에 선 사람이 매일 밤 자기 약함과 싸운 흔적은 이 책에만 있습니다.

물론 한계도 있습니다. 출판을 염두에 두지 않은 글이라 체계가 없습니다. 제1권은 감사의 글이지만 제2권부터는 짧은 단상이 번호만 붙은 채 흩어져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려 들면 길을 잃기 쉽습니다. 이 책은 통독하는 책이 아니라, 아무 페이지나 펴서 한 단락 읽고 덮는 책에 가깝습니다.

저는 이 책을 덮고 나서 책상 앞에 한 줄을 적어 붙였습니다. "흔들리는 건 정상이다. 다시 적으면 된다." 마르쿠스가 2천 년 전에 한 그 일을, 형식만 바꿔 따라 해본 겁니다. 그날 이후 상담 전 잠깐, 오늘 까다로운 분을 만날 수도 있다고 속으로 미리 새깁니다. 신기하게도, 미리 새긴 날은 차 안에서 멈춰 있는 시간이 짧아졌습니다.

낙관도, 평정도 연습입니다. 강철 멘탈을 타고난 사람은 없었습니다. 로마 황제마저도, 매일 아침 똑같은 다짐을 다시 적던 사람이었으니까요.


명상록 / Τὰ εἰς ἑαυτόν (Meditations)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저 / 박문재 역 / 현대지성 /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