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원장님 몇 분과 저녁을 먹었습니다. 두 분이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한 분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수업 하나는 진짜 자신 있거든요. 그런데 6년째 원생이 안 늘어요. 제가 뭘 부족하게 하는 걸까요." 목소리 끝이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다른 한 분은 정반대였습니다. 옆 동네에서 확 큰 학원을 보고 오셨다며, 거기 간판이 영문 이니셜로 바뀌었더라, 현수막에 합격 실적을 큼직하게 박았더라, 우리도 그렇게 가자고 하셨습니다. 이미 디자인 업체까지 알아본 참이었습니다.
두 분은 정반대로 보였습니다. 한 분은 자기를 의심하고, 한 분은 남을 따라 하려 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날 밤 운전하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분이 사실은 같은 실수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여러분이라면 두 분 중 누구에게 더 마음이 가시나요. 그리고 두 분에게 같은 한마디를 건넬 수 있다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마음속에 철길 하나를 깔아둡니다
두 분의 공통점을 저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둘 다 머릿속에 '철길' 하나를 깔아두고 있었습니다. 실력을 올리면 그만큼 보상이 따라온다는 직선. 잘하면 뜨고 못하면 안 뜬다는, 하나의 레일이요.
이 철길을 믿으면 현실이 어긋날 때 반응이 두 가지밖에 안 남습니다. 내가 안 되면 "내 실력이 부족한가 보다"(레일 위에서 내가 느린 거다). 남이 되면 "저 사람은 뭘 했지, 따라 하자"(저 레일 저 자리에 서면 되겠다). 첫 번째 원장님이 앞쪽 반응이고, 두 번째 원장님이 뒤쪽 반응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문제를 오래 들여다보다, 전혀 다른 네 사람에게서 같은 문장을 만났습니다. 네트워크 과학자 바라바시, 창작 에세이스트 오스틴 클레온, 와튼스쿨 마케팅 교수 조나 버거, 포지셔닝 전략의 라이스와 트라우트. 서로 인용도 안 하는 네 사람이 각자 다른 분야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실력과 보상 사이엔 직선이 없고, 그 사이에 층이 하나 더 있다는 것.
바라바시는 그 층을 이렇게 나눴습니다. 성과는 내가 한 일이고, 성공은 그 일에 공동체가 돌려주는 반응이라고요. "숲에서 나무가 쓰러져도 아무도 없으면 소리를 낸 게 아니다." 아무리 크게 쓰러져도 들어줄 사람이 없으면 성공은 아니라는 겁니다. 성과는 내가 만들지만, 성공은 나 혼자 못 만듭니다.
이 층이 있다는 걸 모르면, 사람은 정반대 방향으로 두 번 헛짚습니다. 하나씩 보겠습니다.
첫 번째 도랑 — 안 될 때, 나부터 갈아넣습니다
첫 번째 원장님처럼, 반응이 없을 때 우리는 대개 자기부터 의심합니다. 저는 이걸 '내 탓 함정'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만나 온 원장님들도 안 풀릴 때 첫 질문이 거의 똑같았습니다. "제 수업이 부족한가요?" 그러고는 커리큘럼을 갈아엎고, 밤을 새워 교재를 다시 만들고, 실력을 더 갈아넣습니다.
여기서 어깨를 한 번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반응이 없는 게 당신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바라바시가 짚은 게 이겁니다. 성과에는 한계가 있어도(사람이 100미터를 9초대로 뛰지 5초엔 못 뜁니다), 보상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아주 근소한 성과 차이가 극단적인 보상 차이로 벌어집니다. 그러니 실력을 조금 더 올린다고 보상이 그만큼 따라오지 않습니다. 애초에 레일이 없으니까요.
클레온은 창작자의 언어로 같은 말을 합니다. 잘하는 것과 발견되는 것은 다른 일이라고요. 발견되려면 발견 가능(findable)해야 하고, 아무리 좋아도 온라인에 없으면 이 시대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요. 잘 가르치는 것과, 그 잘 가르침이 세상에 보이는 것은 별개의 과제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안 될 때 던질 첫 질문은 "내 실력이 부족한가?"가 아닙니다. 저라면 이렇게 바꿔 묻겠습니다. 지금 막힌 게 실력인지, 아니면 그 실력이 사람들 눈에 닿는 통로인지.
두 번째 도랑 — 잘된 걸, 껍데기째 베낍니다
두 번째 원장님은 반대쪽 도랑에 발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잘된 걸 보고 그 겉모습을 원인으로 착각하는 것. 저는 이걸 '겉모습 함정'이라고 부릅니다.
옆 학원 간판이 영문 이니셜이라 커 보인다는 판단, 여기서 라이스와 트라우트가 딱 걸립니다. 이들은 회사들이 멀쩡한 이름을 버리고 약자로 도망치는 걸 '이니셜 병'이라 불렀습니다. IBM이나 GE가 이니셜이라서 성공한 게 아니라, 이미 거대해졌기에 이니셜을 써도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겁니다. 인과가 거꾸로예요. 실제로 이름으로 불리는 회사의 인지도가 68퍼센트, 이니셜로 불리는 회사가 49퍼센트였습니다. 무명일수록 이니셜은 손해입니다. 이니셜은 성공의 결과지 원인이 아닙니다. 리무진을 산다고 부자가 되는 게 아닌 것처럼요.
더 서늘한 건 버거가 들려준 실험입니다. 연구자 살가닉은 무명곡 마흔여덟 곡으로 똑같은 음악 사이트 여덟 개를 만들어 평행세계처럼 돌렸습니다. 사람들에게 '몇 명이 먼저 내려받았는지'만 보여줬더니, 같은 곡이 한 세계선에선 1위, 다른 세계선에선 40위가 됐습니다. 곡은 똑같았습니다. 달라진 건 초기의 작은 우연과, 그걸 따라 한 눈덩이뿐이었습니다.
해리포터 원고가 열두 곳에서 거절당한 얘기는 아마 들어보셨을 겁니다. 조앤 롤링이 나중에 필명으로 조용히 낸 소설은, 같은 필력인데도 석 달간 양장본 1,500부밖에 안 팔렸습니다. 이름이 알려지고서야 폭발했고요. 같은 실력, 다른 신호입니다.
그래서 남의 성공을 베낄 때 진짜 위험은, 그 사람의 운과 타이밍까지 비결로 착각해 함께 베낀다는 데 있습니다.
정반대로 보이지만, 뿌리는 하나입니다
여기까지 오면 그날 밤 제 이상한 예감의 정체가 보입니다. 자기를 의심한 첫 번째 원장님과 남을 베끼려던 두 번째 원장님은 정반대로 움직였지만, 같은 믿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실력과 보상이 하나의 철길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이요. 그 철길을 믿으니, 안 될 땐 "내가 느린가" 하며 자기를 갈고, 남이 되면 "저 자리에 서면 되겠다" 하며 껍데기를 옮겨옵니다.
저는 이 대목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서로 모르는 네 분야의 사람이 같은 그림자를 봤다는 것. 네트워크 과학, 창작론, 마케팅 심리, 포지셔닝 전략, 인용도 안 하는 사람들이 각자 다른 길로 걸어와 같은 자리에 도착했습니다. 한 사람의 주장이면 '그 사람 이론'이라 흘려도 되지만, 네 곳에서 같은 그림자가 보이면 그건 이론이라기보다 지형에 가깝습니다.
그 지형을 한 문장으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실력과 보상 사이엔 인식과 연결망과 타이밍으로 이뤄진 층이 하나 더 있고, 그 층은 실력만으로는 안 뚫린다. 이 층을 그려 넣는 순간 두 함정이 동시에 닫힙니다. "실력을 더 갈아넣자"도 "저 겉모습을 베끼자"도, 둘 다 그 층을 건너뛴 처방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오늘, 두 칸으로 나눠보시길
관점만 드리고 끝내면 그것도 결국 탁상공론입니다. 제가 직접 써 보고 도움이 됐던 두 가지를 남깁니다. 저장해두고 다음에 답답할 때 꺼내 쓰셔도 좋습니다.
첫째, 반응이 없을 때 첫 질문을 바꿉니다. "내 실력이 부족한가?" 대신 "내 분야는 성과가 눈금으로 재지는 분야인가?"를 먼저 묻습니다. 기록경기나 객관식 시험처럼 눈금이 분명하면 실력에 투자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강의, 상담, 창작, 교육처럼 눈금이 흐린 분야라면 문제는 대개 실력이 아니라 그 층, 노출과 연결망과 타이밍에 있습니다. 다음에 막힐 때 이 질문 하나만 던져보셔도 절반은 건집니다.
둘째, 남의 성공을 베끼기 전에 종이 한 장을 세로로 반 접습니다. 왼쪽 칸엔 '따라할 수 있는 것', 오른쪽 칸엔 '따라할 수 없는 것'을 적습니다.
| 따라할 수 있는 것 (성과) | 따라할 수 없는 것 (성공) |
|---|---|
| 방법·습관·과정·꾸준함 | 운·타이밍·이미 쌓인 인식과 연결망 |
옆 학원의 상담 흐름, 매일 올리는 기록, 학부모에게 설명하는 방식, 이런 건 왼쪽입니다. 따라 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그 학원이 3년 전 우연히 잡은 입소문, 이미 동네에 깔린 이름값, 영문 이니셜 간판, 이런 건 오른쪽입니다. 오른쪽 칸에 들어간 건 복제 금지 목록입니다. 베껴도 재현이 안 되니까요.
한 가지만 덧붙이면, 겉모습(이니셜, 화려한 실적 배너, 히트작 그 자체)이 오른쪽 칸으로 갔다면 그건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신호입니다. 그걸 베끼는 데 쓸 돈과 시간을, 왼쪽 칸을 꾸준히 쌓는 데 돌리시길 저는 권합니다.
그날 저녁 두 분에게 건넨 같은 한마디는 이거였습니다. "두 분 다 잘하고 계세요. 다만 잘하는 것과 세상에 닿는 것은 다른 일일 뿐이에요."
세상에 철길은 없습니다. 안 될 때 나를 깎지도, 남이 될 때 껍데기를 옮기지도 마시길. 잘하는 것과 세상에 닿는 것은 끝내 다른 일이다. 그 사이의 층을 보는 눈, 그거 하나면 두 도랑을 한꺼번에 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