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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교육·학습설계2026.09.1616분 읽기


정답을 잘 가르칠수록 위험한 이유

수업이 끝난 교실에서 한 아이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전교권 성적표를 늘 들고 다니는 아이였습니다. 방금 함께 읽은 지문을 두고 "너는 이 글쓴이 생각에 동의하니?"라고 물었더니, 아이가 몇 초간 저를 빤히 쳐다보다가 되물었습니다. "그거 시험에 나와요?" 정답이 정해진 질문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순간, 아이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습니다. 정답이 있으면 누구보다 빨리 찾아내는 아이가, 정답이 없다는 사실 앞에서는 그냥 멈춰 섰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해야겠습니다. 그 무렵 저 역시 그 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옆 동네에서 잘 되는 학원의 방식을 마치 정답표처럼 베껴 왔습니다. 그 학원이 여는 설명회를 따라 열고, 그 학원이 쓰는 문구를 따라 쓰고, 그 학원의 반 편성을 그대로 옮겨 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베끼면 베낄수록 우리 학원은 그 학원과 점점 더 구별되지 않는 존재가 되어 갔습니다. 저는 정답이 어딘가에 있다고 믿고 그것을 찾아다녔지, 정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법은 배운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미야자와 마사노리의 《도쿄대 교양학부 생각하는 힘의 교실》은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겨눕니다. 저자는 광고회사 하쿠호도의 현장 실무자이면서, 도쿄대 교양학부에서 '브랜드 디자인 스튜디오'라는 강의를 맡아 온 사람입니다. 2011년에 문을 연 이 수업은 과제 부담이 어찌나 큰지 학생들이 애정 반 원망 반으로 '블랙수업'이라 부르는데도, 6년간 500명 넘게 거쳐 간 도쿄대 최고 인기 교양강의가 됐습니다. 저는 이 책을 또 하나의 '창의력 키우는 법' 자기계발서일 거라 예상하고 펼쳤습니다. 그런데 첫 장에서 저자가 던지는 문제의식은 제 예상과 전혀 달랐습니다.

저자가 관찰한 도쿄대생의 역설은 이렇습니다. 정답이 있는 문제는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데,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는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학교를 나와 마주하는 일의 99퍼센트는 정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저자는 이게 우등생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다수 기업이 빠진 함정이라고 말합니다. 과거를 학습해 개선만 반복하면 경쟁사와 똑같아지고, 성숙한 시장에서 똑같아진다는 건 곧 소멸이라는 것입니다. "개선은 가능해도 새로운 것은 만들어낼 수 없다" — 이 한 문장이 이 책 전체의 출발점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요약합니다. A사와 B사가 사소한 우열을 다투는 사이, 전혀 다른 콘셉트를 든 C사가 시장을 통째로 가져간다고요.

정답이 없는 문제에는 베낄 레일이 없습니다. 옆 학원의 방식이 정답표처럼 보였던 건, 제가 아직 정답 있는 문제만 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 책이 기존의 발상법 책들과 갈라지는 지점이 드러납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법을 다룬 책은 이미 많습니다. 그런 책들은 대체로 개인이 어떻게 번뜩임을 얻을지, 어떤 도구로 혼자 머리를 굴릴지에 초점을 둡니다. 그런데 이 책은 축을 옮깁니다. 발상을 천재의 재능이 아니라 누구나 단련할 수 있는 힘으로 보되, 그 힘을 '혼자'가 아니라 '팀으로 정답 없는 문제를 함께 생각하는 힘'으로 다시 정의합니다. 저자는 아이돌 그룹 노기자카46이 단기 수업만으로 브랜드 콘테스트에서 성과를 낸 사례를 들며, 발상력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프레임으로 단련된다고 못 박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책이 요즘 유행하는 '디자인 사고'조차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디자인 사고가 형식화되면 결국 다시 서로 닮아 버리는 위험이 있다고 보고, 거기에 '질문 자체를 새로 만드는' 예술가의 사고를 한 겹 더 얹습니다.

그 도구가 이 책의 심장인 '리본 사고'입니다. 리본의 매듭처럼, 넓게 정보를 펼쳤다가(인풋), 하나의 콘셉트로 꽉 조였다가(콘셉트), 다시 구체적인 해결책으로 펼치는(아웃풋) 세 단계입니다. 넓히고, 압축하고, 다시 넓힌다. 그런데 저자는 이 프레임을 설명하고 나서 곧바로 뒤통수를 칩니다. "정해진 방법론은 없다. 틀에 갇히는 순간 새로운 사고는 불가능하다." 방법을 가르치는 책이 방법에 갇히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리본 사고의 진짜 목적은 이 프레임을 잘 따르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만의 사고법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고요. 정답표를 나눠 주는 척하면서, 실은 정답표를 버리는 법을 가르치는 셈입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제 학원을 완전히 다르게 보게 됐습니다. 저는 그동안 아이들에게 정답을 빠르게 맞히는 법을 가르치는 데는 능숙했습니다. 그게 제 실력이라 믿었고요. 그런데 정작 학원을 운영하는 일, 그러니까 우리 학원을 옆 학원과 다른 존재로 만드는 일은 정답이 없는 문제였습니다. 저는 그 문제를 정답이 있는 문제처럼 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남의 정답표를 베낄수록 저는 우등생답게 굴고 있었던 셈이고, 그럴수록 우리 학원은 개성을 잃어 갔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정답 맞히는 법을 가르치는 동안, 정작 제 학원은 정답 없는 문제였습니다. 이건 제 게으름이나 실력 부족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리고 어쩌면 대부분의 원장님은, 평생 정답 있는 문제만 잘 푸는 훈련을 받아 온 우등생이니까요.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책에서 제가 이번 주에 실제로 꺼내 쓴 도구는 '콘셉트는 좁을수록 강하다'는 원칙이었습니다. 저자는 넓고 두루뭉술한 마쿠노우치 도시락보다 좁고 뾰족한 슈마이 도시락이 실제로 더 많이 팔린다는 사실을 예로 듭니다. 느슨한 콘셉트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지만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어중간한 70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학원은 무엇이든 잘 가르친다"는 두루뭉술한 자기소개를 버리고, "우리 학원은 ○○이다"를 한 문장으로 좁혀 적어 보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열 개쯤 나왔고, 대부분 옆 학원도 똑같이 쓸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들을 하나씩 지워 나가는 과정 자체가,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정답을 만드는 연습이었습니다.

또 하나 제 손을 붙잡은 장면은 '마시멜로 챌린지'였습니다. 마른 스파게티와 테이프로 가장 높은 탑을 쌓고 꼭대기에 마시멜로를 올리는 게임인데, 놀랍게도 유치원생 팀이 MBA 출신 엘리트 팀을 이깁니다. 엘리트들은 누가 리더가 될지 정하고 완벽한 설계도를 그리다가 시간을 다 써 버리는데, 유치원생들은 일단 쌓아 보고 무너지면 다시 쌓기를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여기에 "머리로 상상해서는 알 수 없다"는 교훈을 답니다. 좋은 것을 만들려면 완벽하게 계획한 뒤 실행하는 게 아니라, 엉성하게라도 빨리 만들어 보고 빨리 실패하며 고쳐 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새 설명회를 여섯 달째 머릿속으로만 굴린 건 제가 신중해서가 아니라, 완벽한 설계도가 있어야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 우등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여섯 달째 머릿속으로만 굴리던 새 설명회 기획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했습니다. 저는 완벽한 대본과 완벽한 슬라이드가 준비되기 전에는 시작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건 신중함이 아니라, 실패가 두려운 우등생의 습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달에는 학부모 세 분만 모시고 20분짜리 엉성한 시범 설명회를 먼저 열어 봤습니다. 예상 못 한 질문에 말이 막혔고, 준비한 자료의 절반은 쓸모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20분이 여섯 달간의 상상보다 저를 훨씬 멀리 데려다줬습니다.

물론 이 책이 모두에게 맞지는 않습니다. 오늘 당장 복사해 붙일 다섯 단계 매뉴얼, 따라만 하면 되는 체크리스트를 기대하는 분이라면 이 책은 답답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대놓고 "정해진 방법론은 없다"고 말하는 책이니, 정답표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역설적으로 가장 불친절한 책입니다. 게다가 사례가 일본 대학생들의 브랜드 콘테스트를 중심으로 흐르기 때문에, 학원 현장으로 곧장 옮기려면 한 번 더 번역하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그 번역을 기꺼이 할 마음이 있는 분에게만 이 책은 열립니다.

책에는 제가 여기서 다 풀지 못한 것들이 더 있습니다. 뻔한 질문이 왜 뻔한 답만 부르는지, '아는 것조차 모르는 영역'에서 어떻게 진짜 발견이 나오는지, 좋은 콘셉트를 가려내는 세 가지 힘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모든 프레임을 결국 버리고 자기만의 사고법으로 넘어가라는 '수파리'의 마지막 당부까지. 특히 마지막 장은 아이디어 발상법 책이 어느새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책으로 바뀌는 지점이라, 여기서 미리 말로 옮기면 김이 샐 것 같아 아껴 두겠습니다.

제가 이 책을 덮으며 끝내 챙긴 한 가지는 이렇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옆 학원과 저를 비교하며 조바심을 냈는데, 그 조바심의 뿌리에는 '어딘가에 정답 레일이 깔려 있고 나만 그 길을 못 찾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 레일이 애초에 없다고 말해 줍니다. 정답이 없다는 건 불안한 소식이 아니라, 베낄 필요도 뒤처질 이유도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주부터 옆 학원의 정답표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줄이고, 우리 학원을 한 문장으로 좁혀 적는 일에 그 시간을 쓰기로 했습니다. 정답을 찾는 우등생에서, 정답을 만드는 사람으로 자리를 옮겨 보려고요.


책 정보

  • 제목: 도쿄대 교양학부 생각하는 힘의 교실
  • 저자: 미야자와 마사노리(宮澤正憲) 저 · 최말숙 역
  • 감수·추천: 마후네 후미타카(真船文隆, 도쿄대 교수)
  • 출판사: 북클라우드(헬스조선) · 2018년 (원서 SB Creativ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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