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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026.06.1611분 읽기

원장님의 가장 위험한 순간은 모를 때가 아니라, 확신할 때입니다.

원장님 다섯 분과 저녁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비슷한 규모, 비슷한 동네, 비슷한 과목. 한 분이 "요즘 어떻게 신규를 받느냐"고 묻자 다섯 개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한 분은 블로그, 한 분은 학부모 소개, 한 분은 설명회, 한 분은 입소문, 한 분은 "솔직히 잘 모르겠고 그냥 됐다"고 했습니다. 재밌는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한 분이 옆 학원에서 잘 됐다는 방법을 그대로 따라 했는데 자기는 안 됐다는 겁니다. 그 자리에 있던 다섯 분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들 한 번씩 당해본 얼굴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 방법을 따라 할 때 그 원장님은 분명 확신했을 겁니다. "저 학원이 저걸로 됐으니 나도 되겠지." 그런데 그 확신은 어디서 왔을까요. 정보가 충분해서였을까요, 아니면 그냥 이야기가 매끄러웠기 때문일까요.

잘 되는 학원의 비결은 정말 '비결'일까

원장님들이 가장 자주 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잘 되는 학원의 방법을 알아내서 따라 하는 것입니다. 컨설턴트 후기를 보고, 잘나가는 학원 블로그를 뜯어보고, 그 원장이 했다는 것을 메모합니다.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저도 그렇게 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보는 것이 '결과'뿐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 학원이 무엇을 했는지(WHAT)는 보입니다. 그런데 왜 그게 그 학원에서 통했는지(WHY)는 보이지 않습니다. 같은 설명회를 열어도 한 곳은 등록이 쏟아지고 한 곳은 빈자리가 납니다. 설명회라는 형식이 같다고 해서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학원만의 동네, 그 원장만의 말투, 그 시점의 운이 함께 작동한 결과입니다.

대니얼 카너먼은 이걸 '타당성의 착각'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매끄럽고 일관된 이야기를 만나면 그게 정확하다고 착각합니다. "저 원장은 ◯◯를 했고, 그래서 성공했다"는 한 문장이 머릿속에서 술술 읽히면, 우리 뇌는 그걸 검증이 끝난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이야기가 매끄러울수록 확신은 커집니다. 정작 그 확신의 근거가 빈약할수록 더 그렇습니다.

확신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이야기의 매끄러움에서 온다

여기서 칼럼의 핵심 한 줄을 드리고 싶습니다. 확신의 크기는 내가 가진 정보의 양이 아니라, 머릿속 이야기가 얼마나 매끄러운가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아는 게 적을수록 오히려 더 확신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게 왜 무서운가 하면, 우리는 보통 반대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만큼 확신하는 걸 보니 근거가 충분한가 보다." 하지만 카너먼이 평생 실험으로 보여준 건 정반대였습니다. 강한 확신은 근거가 충분하다는 신호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빠른 직관이 그럴듯한 이야기를 다 만들어버렸다는 신호일 뿐입니다.

부동산 중개인 실험이 대표적입니다. 같은 집을 두고 호가를 다르게 보여줬더니, 전문가인 중개인들의 추정 가격이 41퍼센트나 휘둘렸습니다. 그런데 더 인상적인 건, 거의 모두가 "나는 그 호가에 영향받지 않았다"고 확신했다는 점입니다. 영향을 받으면서도 객관적이라 믿는 것. 원장님이 첫 상담의 첫인상에, 첫 견적의 숫자에 휘둘리면서도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믿는 것과 똑같은 구조입니다.

이건 원장님이 둔해서가 아닙니다

여기서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따라 했다가 안 됐던 것도, 첫인상에 휘둘렸던 것도, 원장님이 판단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카너먼이 노벨상을 받으며 한 말이 바로 이겁니다. 이 편향은 똑똑함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인지심리학을 평생 연구한 본인조차 여전히 똑같이 속는다고 고백했으니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빠른 직관(시스템 1)은 자동으로 켜집니다. 끌 수가 없습니다. 매끄러운 이야기를 만들고 강한 확신을 빚어내는 그 과정은 의지로 멈출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나는 왜 자꾸 헛다리를 짚을까" 자책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건 원장님 머리가 잘못된 게 아니라, 모든 인간의 머리가 그렇게 설계돼 있는 겁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편향은 의지로는 못 줄여도 절차로는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큰 결정 앞에서는 똑똑함보다 체크리스트가 이깁니다. 머리를 믿지 말고 난간을 믿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내일부터 무엇을 할까

이걸 학원 현장에 갖다 대보겠습니다. 일상의 작은 결정은 직관에 맡겨도 대개 옳습니다. 문제는 되돌리기 어려운 큰 결정입니다. 개원, 확장, 고액 투자, 강사 채용. 이 네 가지 앞에서만 5분을 쓰시면 됩니다.

첫째, 멈추고 자가 진단을 합니다. "나 지금 이 결정에 얼마나 확신하지?" 그리고 확신이 강할수록 더 의심합니다. 이게 가장 반직관적인 부분입니다. 확신이 셀 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둘째, 외부 관점을 봅니다. "나 말고, 비슷한 학원은 어땠나?" 신관을 올리기 전에 같은 동네 신규 학원의 생존율을 찾아봅니다. "이 신사업 6개월이면 자리 잡는다"는 느낌 대신, 비슷한 시도들이 실제로 얼마나 걸렸는지 숫자를 봅니다. 카너먼의 교과서 집필팀은 "2년이면 끝난다"고 했다가 8년이 걸렸고 결국 폐기됐습니다. 6개월짜리 확신이 2년이 되는 건 원장님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계획 오류라는 이름이 붙은 인간의 기본 설정입니다.

셋째, 강사 채용이라면 첫인상으로 정하지 마십시오. 대신 지표를 따로 채점합니다. 과거 재직 기간, 약속 이행 여부, 수업 시연, 동료 평가. 이 네 가지를 각각 점수로 매겨 합산합니다. "느낌이 좋다"는 한 덩어리 판단을 네 조각으로 쪼개는 순간, 매끄러운 첫인상이 가려놨던 빈자리가 드러납니다.

넷째, 가장 강력한 한 가지. 결정을 내리기 직전에 이렇게 적어보십시오. "1년 뒤, 이 결정이 참담하게 실패했다. 그 이유를 5분간 적는다." 신기하게도, 그동안 눌려 있던 의심들이 이때 쏟아져 나옵니다. "옆 학원처럼 될 거야"라는 매끄러운 이야기 밑에 깔려 있던 진짜 걱정들이 그제야 목소리를 냅니다.

따라 하지 말고, 다시 물으십시오

다시 그날 저녁 식사로 돌아갑니다. 옆 학원 방법을 따라 했다가 안 됐다던 원장님께, 지금이라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따라 한 게 잘못이 아니라, '왜 그 학원에서 그게 됐는지'를 묻지 않은 게 아쉬웠던 거라고요.

결과만 보면 잘 되는 학원들은 다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왜 그랬는지를 파고들면, 열 곳이면 열 곳이 다 다른 이유로 거기까지 갔습니다. 복사할 수 있는 건 그들이 한 일(WHAT)뿐이고, 정작 중요한 이유(WHY)는 그 학원만의 것입니다. 그러니 잘 되는 방법을 하나 더 '더하기' 전에, 멈춰 서서 '다시 묻는' 편이 낫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우리 학원에서, 이게 정말 통할 이유가 무엇인가.

원장님의 가장 위험한 순간은 모를 때가 아니라, 확신할 때입니다. 확신이 들거든, 축하할 일이 아니라 한 번 더 의심할 신호로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