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1층에 학원 세 곳이 나란히 붙어 있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현수막 문구가 거의 똑같았습니다. 한 곳은 "더 꼼꼼하게", 옆은 "더 책임지고", 그 옆은 "1:1 맞춤으로 더 잘". 셋 다 '더'라는 글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더 잘 가르치겠다는 약속. 저는 그 앞에 서서 잠깐 생각했습니다. 학부모가 저 셋 중 하나를 고르려면, 결국 무엇을 비교해야 할까요. 가격, 합격 실적, 후기 별점. 그렇게 셋은 서로를 비교당하는 처지로 스스로를 밀어 넣고 있었습니다. 더 잘하겠다고 외친 대가로요.
러셀 브런슨의 《브랜드 설계자》가 정면으로 건드리는 게 바로 이 지점입니다.
브런슨은 클릭퍼널스(ClickFunnels)라는 온라인 판매 도구 회사를 만든 사람입니다. 직접 반응 마케팅, 그러니까 광고 한 번에 얼마가 돌아오는지 숫자로 추적하는 판매를 자기 사업을 실험대 삼아 검증해 온 실무가입니다. 이 책의 원제는 《Expert Secrets》, 전문가가 자기 지식을 어떻게 돈으로 바꾸는가에 관한 책입니다. 저는 솔직히 이 책을 처음 폈을 때, 또 하나의 '온라인으로 돈 버는 19가지 비법'일 거라 기대했습니다. 후킹 멘트 모음집 같은 것 말이죠.
그런데 제가 발견한 건 마케팅 기법이 아니라, 사람이 왜 사고 왜 멈추는가에 관한 심리학이었습니다.
책에서 가장 오래 멈춰 있었던 대목은 시크릿4였습니다. 브런슨은 사람들이 '개선안'을 본능적으로 피한다고 말합니다. 개선안이란 "지금 하던 걸 더 좋게, 더 빠르게, 더 싸게" 하자는 제안입니다. 우리가 현수막에 적는 바로 그 '더'입니다. 그런데 그는 사람이 이 '더'를 왜 외면하는지 네 가지 이유로 분해합니다. 첫째, 개선은 어렵습니다. '더 잘하라'는 말은 결국 '더 노력하라'는 말로 들립니다. 둘째, 그렇게 더 노력할 야망이 있는 사람은 인구의 2%뿐입니다. 셋째, 개선안을 받아들이려면 "지금까지 내가 못했다"는 과거의 실패를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넷째가 가장 무섭습니다. 또 시도했다 실패하면 체면이 깎인다는 두려움.
브런슨은 여기서 한 단어에 모든 걸 겁니다. 지위(status). 그는 "지위야말로 사람을 움직이거나 멈추게 하는 유일한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이게 제 머릿속에서 학원 상담실 풍경과 겹쳤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학부모가 학원을 고를 때 '성적이 오르는가'를 따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책의 이 대목을 읽고 나니, 상담실에서 학부모가 진짜로 저울질하던 게 다르게 보였습니다. 한 어머니가 전에 보내던 학원을 그만두고 우리에게 올 때, 그분은 단지 새 학원을 고르는 게 아니었습니다. "지난 1년 그 학원을 보낸 내 선택이 틀렸다"는 걸 자기 자신에게 인정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상담에서 제가 "거기보다 우리가 더 잘합니다"라고 말할수록, 그 어머니의 표정이 굳었던 겁니다. 제 말이 그분의 지난 선택을, 그분의 체면을 깎고 있었으니까요.
여기가 이 책이 다른 마케팅 책과 갈라지는 지점입니다. 시중의 포지셔닝 책들이 "어떻게 하면 경쟁에서 더 차별화될까"를 다룬다면, 이 책은 한 발 더 들어가 **"왜 더 좋다는 말 자체가 사람을 멈추게 하는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 해법으로 '새로운 기회'를 내놓습니다. 더 좋은 걸 팔지 말고, 새로운 길을 팔라는 겁니다. 잡스가 "용량 큰 MP3 플레이어"(개선안)가 아니라 "주머니 속 1000곡"(새 경험)을 판 것처럼요. 새 카테고리에는 비교 대상이 없습니다. 비교가 없으면 가격 경쟁도, 별점 다툼도 사라집니다. 무엇보다, 새 카테고리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 줍니다. "당신이 못한 게 아니라 방법이 틀렸던 거예요." 과거의 실패를 사람 탓이 아니라 옛 방법 탓으로 옮겨, 다시 시작해도 체면이 깎이지 않는 길을 열어 줍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한 원장님이 떠올랐습니다. 그분은 "수학을 못하는 아이"를 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수학이 무서운 아이"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같은 아이를 두고 단어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찾아오는 학부모의 표정이 달랐다고 합니다. "못한다"는 말은 부모에게 과거의 실패를 들이밀지만, "무섭다"는 말은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다뤄야 할 감정으로 문제를 옮겨 주니까요. 그 원장님은 브런슨을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15년 현장이 그분에게 같은 원리를 가르쳐 준 겁니다. 책의 이론과 상담실의 직관이 같은 곳을 가리킬 때, 저는 그게 진짜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원장님께 이 책이 건네는 진짜 선물은 기법이 아니라 시선의 교정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학원이 안 될 때 보통 "내가 덜 잘해서"라고 자책합니다. 그래서 더 꼼꼼히, 더 책임지고, 더 잘하겠다고 현수막을 바꿔 답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더'가 문제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원장님이 부족한 게 아닙니다. 사람을 멈추게 하는 말을 열심히 외치고 있었을 뿐입니다. 사람은 더 좋은 것을 사지 않습니다. 다시 시작해도 체면이 깎이지 않을 새 출발을 삽니다. 이 한 줄이 제 안에서 오래 남았습니다.
물론 이 책을 그대로 삼키면 위험한 지점도 분명합니다. 브런슨의 화법은 직접 반응 마케팅 특유의 강한 단정으로 가득합니다. "유일한 열쇠", "이 방법으로만 가능하다" 같은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신뢰가 생명인 학부모 시장에서 이 강도를 그대로 쓰면 오히려 역풍을 맞습니다. 새 카테고리도 만능은 아닙니다. 아무도 모르는 개념은 설명에 시간과 돈이 더 들고, 검증 안 된 새로움은 그저 낯섦으로 끝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덧붙이자면, 저는 이 책의 뼈대 전체와 앞부분(전문가 되기·스토리셀링의 입구·새로운 기회·지위)은 본문까지 읽었지만, 후반의 설명회 설계 세부(스택을 쌓아 가격을 작게 보이게 하는 클로즈 기법 같은 것)는 아직 전략 슬라이드 수준으로만 훑었습니다. 그 부분까지 다 안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입구에서 본 풍경만으로도, 이 책이 왜 마케팅 책이 아니라 사람 책인지는 충분히 보였습니다.
그리고 브런슨에게는 책에 닿은 계기가 있습니다. 그는 한때 자기 지식을 논리와 전문용어로 똑똑하게 설명하면 팔릴 거라 믿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 팔렸습니다. 그가 깨달은 건 "사람은 감정으로 사고, 논리로 정당화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 곳곳에서 그는 논리로 설득하지 말고 자기가 깨달은 순간의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그 원리를 책 자체에 적용했습니다. 이 책이 메마른 마케팅 교본이 아니라 한 사람의 깨달음 기록처럼 읽히는 건, 그가 자기 주장을 자기 글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책을 덮고 우리 학원 안내문을 다시 꺼냈습니다. 거기에도 '더'가 세 번 적혀 있더군요. 더 체계적으로, 더 세심하게, 더 결과로. 저는 그 세 줄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우리가 누구를 위한 곳인지, 어떤 아이의 어떤 막힘을 푸는 곳인지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옆 학원보다 잘하겠다는 약속을 지운 자리에, 비교당하지 않는 우리만의 문장을 채워 넣은 겁니다. 신기하게도, 문장이 줄어들수록 우리 학원이 또렷해졌습니다.
브랜드 설계자 / Expert Secrets / 러셀 브런슨(Russell Brunson)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