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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심리·행동·관계2026.06.2412분 읽기


상담을 마친 원장님이 한숨을 쉬며 그러셨습니다. "남의 학원은 다 잘되는 것 같은데, 우리만 제자리인 것 같아요."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말이 더 인상 깊었습니다. "또 뭘 해야 하나… 전단지를 더 돌려야 하나, 이벤트를 더 해야 하나."

저는 그 두 문장 사이의 거리가 늘 마음에 걸립니다. 앞 문장은 "내가 흔들린다"는 고백인데, 뒤 문장은 곧장 "그러니 뭘 더 하자"는 처방으로 건너뜁니다. 흔들림과 더하기가 한 호흡에 붙어 있는 거죠. 마치 마음이 불안하면 손이 자동으로 뭔가를 집어 드는 것처럼요. 그런데 저는 이 자동 연결이야말로 원장님을 가장 지치게 만드는 함정이라고 봅니다.

흔들리면 왜 우리는 늘 '더하기'로 갈까

원장님들을 오래 곁에서 보며 발견한 패턴이 하나 있습니다. 흔들릴 때 원장의 본능은 거의 예외 없이 '더하기'라는 것입니다.

등록이 줄면 광고를 더 합니다. 항의 문자가 오면 답장을 다섯 번 고쳐 씁니다. 옆 학원이 새 프로그램을 열면 우리도 하나 붙입니다. 흔들림이 클수록 더하는 양도 늘어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학원에는 '내가 왜 시작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일들'이 한가득 쌓입니다. 손은 바쁜데 마음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습니다.

저도 한동안 그랬습니다. 소심한 편이라 불안하면 일단 뭐라도 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더해서 가라앉은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더하면 잠깐 '뭔가 하고 있다'는 안도감은 들지만, 정작 나를 흔든 그 마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더하기는 흔들림을 다스리는 게 아니라, 흔들림을 잠시 다른 데로 떠미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흔들릴 때 원장의 본능은 거의 예외 없이 '더하기'입니다. 그런데 더해서 마음이 가라앉은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2000년 전, 황제가 막사에서 매일 한 일은 '더하기'가 아니었습니다

이쯤에서 의외의 인물 한 사람을 모셔오고 싶습니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입니다. 학원 이야기에 웬 황제냐 싶으시겠지만, 끝까지 들어보시면 이만큼 원장님을 닮은 사람도 없습니다.

그가 남긴 명상록은 사실 출판하려고 쓴 책이 아니었습니다. 전쟁터 막사에서, 매일 밤 자기 자신에게만 쓴 일기였습니다. 제국의 최고 권력자였던 그가 무엇이 그렇게 불안해서 매일 밤 펜을 들었을까요. 그는 알았던 겁니다. 권력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일이 매일 쏟아진다는 것을요. 전쟁, 배신, 역병, 죽음. 황제의 자리에 앉아 있어도 통제 밖의 일은 끝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보통의 권력자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군대를 더 늘리고, 신하를 더 부리고, 명령을 더 내렸을 겁니다. 전형적인 '더하기'죠. 그런데 마르쿠스가 막사에서 매일 반복한 일은 정반대였습니다. 그는 흔들릴 때마다 한 문장으로 일을 가르는 연습을 했습니다. "나를 흔드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내가 붙인 판단이다."

저는 이 대목에서 무릎을 쳤습니다. 황제가 막사에서 쓴 자기 처방전과, 상담과 상담 사이에 마음을 추스르는 원장님의 1분이 정확히 같은 장르의 글이라는 것을요. 둘 다 통제할 수 없는 일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는 사람의 기록입니다. 2000년의 시차가 무색할 만큼요. 그가 더하기 대신 택한 것은 '가르기'였습니다.

황제가 막사에서 쓴 자기 처방전과, 상담과 상담 사이 원장님의 1분은 정확히 같은 장르의 글입니다.

'가르기'는 더하기보다 어렵습니다. 대신 효과가 다릅니다

이전 섹션이 "황제는 더하지 않고 가르더라"였다면, 이제 그 가르기를 원장님 책상으로 가져와 보겠습니다.

방법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흔들림이 오면, 뭘 더 할지 떠올리기 전에 종이 한 장을 꺼내 가운데 줄을 긋습니다. 왼쪽에는 '내가 어쩔 수 있는 것', 오른쪽에는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을 적습니다.

"남의 학원은 다 잘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오른쪽 칸을 먼저 채워보면 이렇습니다. 옆 학원의 등록 수, 동네 학부모들의 입소문, 작년에 빠진 학생, 경기 흐름. 전부 내 손을 떠난 일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남의 학원이 다 잘된다"는 것 자체가 대부분 제가 머릿속에서 만든 그림입니다. 옆 학원도 똑같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우리는 그 막사 안을 못 보니까 모를 뿐이죠. 왼쪽 칸으로 가면 갑자기 작아집니다. 오늘 내가 학부모 한 분께 보낼 문자, 이번 주 수업의 질, 내일 상담의 첫 마디. 손에 쥘 수 있는 건 의외로 이 몇 개뿐입니다.

이게 왜 효과가 있을까요. 우리 머리는 통제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한 덩어리로 처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옆 학원이 잘된다"가 곧장 "그러니 나도 뭘 더 해야 한다"로 자동 연결됩니다. 종이에 둘을 나눠 적는 행위는 그 자동 연결을 일부러 끊는 장치입니다. 손으로 가르는 1분이, 머릿속 자동반응에 제동을 거는 겁니다.

종이를 꺼낼 상황이 아니라면, 속으로라도 한 줄만 물어보십시오. "이건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인가?" 어쩔 수 없는 일이면, 거기 붙은 '나쁘다'는 도장을 떼고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어쩔 수 있는 일이면, 그 한 가지에만 손을 댑니다. 더하기 전에 가르면, 해야 할 일의 목록이 길어지는 게 아니라 짧아집니다. 흔들릴 때 우리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한 가지를 더하는 게 아니라, 한 가지를 가르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답은 새 정보가 아니라, 이미 가진 점들의 연결에서 옵니다

여기까지 읽으시고 "그래서 결국 뭘 하라는 건데, 새로운 비법은 없나"라고 생각하셨다면, 바로 그 마음을 짚고 싶습니다.

제가 일하며 가장 깊이 믿게 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좋은 답은 어디서 새로 가져오는 정보가 아니라, 내가 이미 가지고 있던 점들을 다시 잇는 데서 온다는 것입니다. 명상록이 딱 그랬습니다. 마르쿠스는 단 한 번도 "이렇게 하면 제국이 흥한다"는 새 비법을 적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기가 이미 아는 것을 매일 다시 이었을 뿐입니다. 사건과 판단을 가르고, 내 것과 내 것 아닌 것을 가르고요.

원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흔들릴 때 필요한 건 새 전단지 디자인이나 새 이벤트 아이디어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이미 알고 있던 것 —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은 사실 몇 개 안 된다는 것, 나머지는 흘러가게 두어도 된다는 것 — 을 그 순간 다시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흔들릴 때 더 배우러 다니지 말고, 먼저 가르러 책상에 앉으시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러니 "또 뭘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거든, 그게 잘못된 마음은 아니라는 것부터 기억해 주십시오. 흔들리는 건 원장님 성격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흔들립니다. 다만 우리는 흔들림과 더하기를 한 덩어리로 붙여둔 채, 그것을 가르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을 뿐입니다.

오늘부터는 흔들릴 때 손을 멈추고 한 줄만 물어보십시오. "이건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인가." 그 한 줄이 다스릴 곳을 정확히 짚어줍니다. 다스릴 곳은 언제나 옆 학원도, 학부모의 마음도, 어제의 결과도 아닌, 늘 원장님 안에 있었으니까요.

이 칼럼은 심리·행동·관계 분야를 보면서 정리한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