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들을 오래 만나다 보면 거의 모든 불안이 한 문장으로 수렴하는 걸 봅니다. "옆 학원은 저렇게 큰데, 나는 왜 이 정도일까." 재작년에 만난 한 원장님은 학생 수도 안정적이고 재등록률도 좋았는데, 상담 내내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차로 십 분 거리 학원이 3호점을 냈다는 겁니다. 숫자로 보면 그분 학원은 멀쩡했습니다. 무너진 건 학원이 아니라, 성공이라는 단어의 정의였습니다. 그분은 자기 성공을 옆 학원의 호점 수로 재고 있었던 겁니다.
저도 한때 그랬습니다. 가르치는 일이 좋아서 시작했으면서, 어느 순간부터 성공을 '규모'로만 재고 있었습니다. 제 성공의 정의를 남이 대신 써주고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러다 집어 든 책이 와튼스쿨 G. 리처드 셸 교수의 『와튼스쿨은 딱 두 가지만 묻는다』(원제 Springboard, 2013)입니다. 와튼 경영대학원에 딱 하나 있는 '성공학 강좌'를 책으로 옮긴 것이라기에, 솔직히 저는 비법을 기대했습니다. 명문 경영대가 가르치는 성공 공식이라면 뭔가 근사한 시스템이 있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펼치자마자 저자가 못을 박습니다. 성공에 만능 비결 같은 건 없다고요. 그는 자기가 "성공을 보장하는 절대적 시스템을 파는 동기부여 강사가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긋습니다. 대신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던지는 딱 두 질문을 독자에게 그대로 돌려줍니다. 첫째, 당신에게 성공이란 무엇인가. 둘째, 그 성공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책의 1부 전체가 첫 질문에, 2부 전체가 둘째 질문에 바쳐져 있습니다. 답은 적혀 있지 않습니다. 답을 쓰는 칸만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기대가 무너지는 대신 오히려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제가 찾던 게 '옆 학원을 따라잡는 법'이 아니라는 걸 그제야 알았기 때문입니다.
셸이 왜 이렇게 정답 팔기를 한사코 거부하는지는, 그 자신의 이야기를 읽으면 납득이 갑니다. 그는 20대에 인생이 산산조각 난 사람입니다. 장학금을 반납하고 페인트공과 사회복지사로 떠돌다가, 3천 달러와 배낭 하나로 세계를 돌았고, 카불에서 간염으로 쓰러져 밑바닥을 쳤습니다. 스리랑카의 불교 수도원에서 하루 열여덟 시간을 명상했고, 한국 송광사까지 흘러와 구산 스님에게 승려가 되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서른일곱에야 와튼 교수가 됩니다. 이력이 화려해서 꺼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요한 건 그가 젊은 날 얻은 깨달음 한 줄입니다. 어렵게 번듯한 사무실을 하나 얻고서 그는 깨닫습니다. 성공은 '장소'가 아니다. 새 직장도 페인트공 시절보다 나을 게 없었으니까요.
바로 이 지점이 작가가 자기 책에 심어둔 숨은 한 수라고 저는 봅니다. 셸이 정답을 안 주는 건 불친절이 아니라, 정답을 밖에서 찾다 인생을 허비해본 사람의 양심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와 정확히 반대편에 섭니다. 『아웃라이어』가 재능과 행운과 유전자를 타고난 극소수 최상위 성공을 설명하는 책이라면, 셸의 책은 "그렇지 못한 우리 나머지"를 위해,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뛰어오를 발판(springboard)을 만드는 책입니다. 『시크릿』이나 나폴레온 힐처럼 "믿으면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정신력 학파도 그는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비밀은 없고, 분명한 목적과 고된 노력과 끈기만 있다고요.
그러면 셸이 내놓는 첫 번째 도구, 성공의 두 얼굴부터 보겠습니다. 그는 성공을 두 관점으로 가릅니다. 하나는 충족과 만족과 행복 같은 사적인 '내적 성공', 다른 하나는 성취와 사회적 인정 같은 공적인 '외적 성공'입니다. 강의에서 그는 고성취 수강생들에게 여섯 인물의 삶에 순위를 매기게 했는데, 월스트리트 임원과 의사들 다수가 뜻밖에도 조용히 돌을 다듬는 '석공의 삶'을 1~2순위로 꼽았다고 합니다. 입으로는 외적 성공을 좇으면서, 마음 깊은 곳은 내적 성공을 향하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만난 그 원장님의 어두운 표정이 바로 이 틈에서 나온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기서 원장님께 이 책이 건네는 관점 하나를 옮기고 싶습니다. 셸은 3장에서 '파이 먹기 대회'라는 변호사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좋은 대학, 좋은 로스쿨, 일류 로펌, 파트너… 이길 때마다 더 큰 파이가 주어지는데, 정신 차려 보면 그저 남이 차려놓은 대회에 평생 참가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학원으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학생 수, 호점 수, 매출 순위 — 이 대회의 규칙은 제가 만든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옆 학원이 한 칸 올라가면 내가 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셸은 이것을 '아귀(餓鬼)', 즉 몸집은 코끼리만 한데 입은 바늘구멍이라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굶주린 유령에 비유합니다. 옆 학원과의 비교로는 영원히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비교하지 말고 마음을 비우세요" 정도의 덕담으로 끝났다면 저는 서점에 이미 많은 그런 책 중 하나로 흘려보냈을 겁니다. 셸은 판정 도구를 하나 쥐여줍니다. '복권 테스트'입니다. 1억 달러에 당첨되고 유명해져서 지위와 부와 명성이 평생 보장된다면, 그다음 당신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이 질문에 답이 술술 나오면 당신은 자기 목표를 갖고 사는 사람이고, 막막하면 사회의 인정에 과하게 투자하고 자기 목표에는 과소투자하고 있다는 신호라는 겁니다.
저는 이걸 원장님 버전으로 바꿔서 실제로 컨설팅에서 써봤습니다. "내일 당장 지역 1등이 보장되고 대기자가 줄을 선다고 칩시다. 그럼 원장님은 그 학원에서 매일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이 질문에 눈이 반짝이며 "아이들 독해 수업을 제대로 설계해보고 싶어요"라고 답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한참을 말을 못 잇는 분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그분에게 필요한 건 마케팅 전략이 아니라 자기 성공의 정의를 다시 쓰는 일이었습니다. 셸의 표현을 빌리면, 남들이 지위 때문에 주는 '인식 존중'(금방 녹는 솜사탕)을 좇느라, 내 실력을 아는 사람이 주는 '이해 존중'을 놓치고 있었던 거죠.
혹시 지금 옆 학원보다 못 컸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실패한 원장이라 자책하고 계신다면, 한 가지만 짚고 싶습니다. 그건 원장님이 게으르거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성공의 정의를 남에게 맡겨두었기 때문입니다. 저녁 식탁의 "누구네는 3호점 냈다더라" 같은 말들이 쌓여 무의식에 '성공=규모'라는 최면을 걸어둔 것뿐입니다. 셸이 책 내내 반복하는 말이 그래서 묵직합니다. 성공은 자각에서 시작된다고요.
이 책에는 제가 여기서 다 풀지 못한 것이 더 있습니다. 1부만 해도 의미 있는 일을 찾는 일곱 토대(PERFECT) 같은 워크북이 붙어 있고, 2부로 넘어가면 정의한 성공을 실제로 이루는 다섯 단계가 펼쳐지며, 자기 재능을 '뒷마당의 다이아몬드'처럼 발굴하는 성격 평가 도구(SAME)가 장마다 빈칸으로 기다립니다. 그 대목들은 직접 연필을 들고 채워야 맛이 나는 부분이라, 여기서 제가 대신 채워 드리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솔직하게 한계도 적겠습니다. 이 책은 사례가 많고 인용이 풍부한 만큼, 빠르게 답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산만하게 읽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를 찾는 독자라면 답답할 겁니다. 하지만 애초에 결론을 대신 내주지 않겠다는 게 이 책의 철학이니, 그 답답함마저 저자가 의도한 설계에 가깝습니다.
이 책을 덮고 제가 바꾼 건 거창한 게 아닙니다. 학원 성공을 규모로 재던 칸을 지우고, "나는 아이가 어떻게 읽게 만들면 가장 뿌듯한가"라는 문장으로 그 칸을 다시 채웠습니다. 셸이 자신의 성공을 "남들이 자기 고유의 길을 찾고 발전하도록 돕는 것"이라 정의한 것처럼요. 그러고 나니 옆 학원의 3호점 소식이 예전만큼 저를 찌르지 않았습니다. 종목이 다른 사람과는 순위를 매길 수가 없으니까요. 옆 학원만큼 못 커서 불안하셨다면, 이 책이 던지는 그 두 질문에 먼저 답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성공의 정의를 남에게 맡겨둔 채로는, 아무리 커져도 그 불안은 줄지 않습니다.
책 정보
- 제목: 와튼스쿨은 딱 두 가지만 묻는다
- 원제: Springboard: Launching Your Personal Search for Success (2013)
- 저자: G. 리처드 셸 (G. Richard Shell)
- 역자: 김윤재
- 출판사: 마인드빌딩
- 출간연도: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