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늘 무서웠습니다. 학원을 처음 열고 첫 설명회를 잡았을 때, 전날 밤 화장실에 세 번을 들락거렸습니다. 정작 단상에 서니 목소리는 떨렸고, 준비한 말의 절반을 빼먹었습니다. 끝나고 나서 빈 강의실 의자에 한참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제 머릿속을 채운 문장은 딱 하나였습니다. "나는 원래 이런 일에 안 맞는 사람이구나."
그 한 문장으로 저는 그 뒤로도 몇 년을, 설명회를 강사에게 떠넘기거나 아예 안 하고 버텼습니다. 외향적인 옆 학원 원장님이 단상에서 농담을 던지며 학부모를 웃기는 걸 보면, 저 사람은 타고났고 나는 안 타고났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게 신중한 자기 인식이라고 믿었습니다. 사실은 가장 편한 변명이었는데 말입니다.
브라이언 리틀의 『내가 바라는 나로 살고 싶다』를 집은 건, '내향형이 어떻게 버티는가' 같은 처세서를 기대해서였습니다. 성격 유형 검사 한 번 더 받고 "당신은 이런 사람이니 이렇게 사세요"라는 위로를 들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제게 한 말은 정반대였습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당신이 타고난 성격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케임브리지대학 심리학과에서 50년 가까이 성격을 연구한 사람입니다. 하버드 졸업반이 3년 연속 '가장 좋아하는 교수'로 뽑았다는 그 사람이, 정작 자기 입으로 강의가 끝나면 화장실 칸이나 빈 벽장에 숨어서 혼자 회복한다고 고백합니다. 학생들이 사랑한 그 활기찬 강의는, 사실 타고난 내향형이 무대 위에서 잠깐 켜둔 모습이었던 겁니다. 이 한 장면이 책 전체의 무게를 만듭니다. 성격을 평생 연구한 사람이, 성격이 사람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니까요.
리틀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사람을 만드는 힘은 셋이라는 것입니다. 첫째는 타고난 기질입니다. 외향성, 성실성 같은 것 말입니다. 둘째는 역할과 문화, 즉 내가 놓인 환경입니다. 앞의 둘은 우리를 끌고 갑니다.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힘이지요. 그런데 셋째가 있습니다. 저자는 이걸 퍼스널 프로젝트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지금 의식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일들의 묶음입니다. 쓰레기 버리기 같은 사소한 일부터, 좋은 학원을 만들겠다는 일생의 목표까지 전부요. 앞의 두 힘이 나를 끌고 간다면, 이 세 번째 힘은 내가 끕니다.
여기서 이 책이 다른 성격 책들과 갈라집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성격 이야기, MBTI든 빅파이브든, 결국 "당신은 이런 사람입니다(having)"라고 명사로 사람을 묶어 둡니다. 어떤 통은 단단하고 어떤 통은 무릅니다. 리틀은 그 통의 뚜껑을 엽니다. 사람을 '가진 성격'이 아니라 '하고 있는 행위(doing)'로 보면, 변화의 문이 열린다는 겁니다. 성격은 못 바꿔도, 지금 무엇을 추구하느냐는 내가 고를 수 있으니까요. 같은 심리학 책이라도, 어떤 책이 "당신을 알라"에서 멈춘다면 이 책은 "당신이 무엇을 향하는지를 보라"로 한 걸음 더 갑니다.
그리고 제 설명회 이야기로 정확히 돌아오는 개념이 나옵니다. **자유 특성(Free Traits)**입니다. 타고난 기질과 정반대로 행동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내향적인 사람이 상황이 필요로 할 때 외향적으로 연기하는 것이지요. 리틀은 이걸 결함이나 가식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에게 정말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을 때, 사람은 본성을 거슬러서라도 그 행동을 해낸다고 말합니다. 무대 뒤에 숨던 그 교수가 단상 위에서는 활기찰 수 있었던 이유가 이겁니다. 가르치는 일이 그에게 핵심 프로젝트였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제 어깨가 내려갔습니다. 첫 설명회 날 제가 떨었던 건, 제가 그 일에 안 맞는 사람이라는 증거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떨었다는 건 그 자리가 저에게 그만큼 중요했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면 떨지도 않았을 겁니다. 두려움은 부적합의 신호가 아니라, 핵심 프로젝트를 손에 쥐었다는 신호였던 겁니다. 원장님, 혹시 단상이 무서우십니까. 그건 원장님이 그 일에 안 맞아서가 아닙니다. 학원이 원장님에게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원장님에게 주는 렌즈는 이렇습니다. 자기를 '나는 어떤 성격이다'로 가두지 말고, '나는 지금 어떤 프로젝트를 추구하는가'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내향적인 원장님이 상담실에서 처음 보는 학부모와 한 시간을 따뜻하게 대화하는 일, 단상에서 떨면서도 끝까지 발표를 마치는 일은 성격을 배신하는 게 아닙니다. 핵심 프로젝트를 위해 자유 특성을 켜는 일입니다. 그렇게 보면, 평생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라는 말로 못 하던 일에 손을 댈 수 있게 됩니다.
다만 리틀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가지 안전장치를 답니다. 자유 특성을 너무 오래 켜두면 사람은 번아웃됩니다. 본성을 거스르는 일은 에너지를 빠르게 태우니까요. 그래서 본래의 성격과 조화로운 환경으로 돌아가 회복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자는 이걸 틈새 회복이라고 부릅니다. 강의 후 벽장에 숨던 그 습관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15년간 봐 온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설명회를 멋지게 해내는 외향형 원장님들 중에도, 행사 다음 날이면 이상하게 학원에 안 나오거나 종일 사무실 문을 닫고 있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걸 '게으름'이나 '뒷심 부족'이라고 오해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그분들은 본능적으로 자기만의 벽장을 찾아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내향형 원장님이라면 이 회복 시간을 죄책감 없이, 일정표에 정식으로 넣어 두셔야 합니다. 연기 다음엔 반드시 충전이 와야 하니까요.
물론 이 책이 만능 해법서는 아닙니다. 리틀은 무엇을 핵심 프로젝트로 삼아야 하는지는 말해 주지 않습니다. 그건 각자의 몫으로 남겨 둡니다. 또 학자다운 신중함 탓에, 손에 쥐고 당장 따라 할 단계별 실행법을 기대하면 다소 헐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책에는 '진정한 나는 하나가 아니다'라는 복합 진정성 이야기도, 행복이라는 상태가 아니라 핵심 프로젝트를 밀고 나가는 과정에 삶의 질이 있다는 '웰두잉' 개념도 더 있습니다만, 그건 직접 펼쳐 만나시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다 풀어 버리면 그 발견의 맛이 사라질 테니까요.
저는 이 책을 덮고 나서, 미뤄 두었던 설명회를 다시 제 입으로 잡았습니다. 여전히 전날엔 떨립니다. 그런데 이제 그 떨림을 '나는 안 맞는 사람'의 증거로 읽지 않습니다. 단상에 서서 잠깐 켜는 그 모습도 분명 저입니다. 끝나고 빈 강의실에서 혼자 숨 고르는 모습도 저고요. 둘 다 진짜입니다. 비겁하게 피하던 자리를, 두려움을 끌어안은 채 한 걸음 내딛는 일. 리틀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이 바로 내가 바라는 나로 사는 방법이었습니다.
"설명회 앞에서 떠는 건 성격이 들킨 게 아니라, 중요한 프로젝트를 쥐었다는 증거였습니다."
『내가 바라는 나로 살고 싶다』 (원제 Who Are You, Really?) 브라이언 리틀 지음 · 강이수 옮김 · 매경출판 · 2020 (원서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