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고도 허전하다면, 당신이 틀린 게 아닙니다
오래 준비한 일을 마침내 끝낸 밤을 떠올려 봅니다. 합격 발표를 본 날, 큰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날, 1년을 매달린 프로젝트를 넘긴 날. 분명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이 생각보다 짧았던 경험,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자정이 되기도 전에 이상한 허전함이 슬그머니 올라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는 어느새 더 큰 다음 목표를 적고 있습니다. 또 식을 줄 알면서도요.
저는 이 장면을 오래 붙들고 있었습니다. 왜 이루고 나면 늘 비어 있을까. 그러다 만난 책들이 정반대 처방을 내놓는 걸 보고 더 헷갈렸습니다.
정반대인데 둘 다 맞는 두 조언
한쪽에는 농구 트레이너 팀 그로버가 있습니다. 마이클 조던을 길러낸 사람이죠. 그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만족하지 마라. 정상에 서면 또 다른 정상을 갈망하라." 결코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야말로 최고를 가른다는 겁니다.
다른 쪽에는 "과정을 사랑하라"는 오래된 지혜가 있습니다. 도착점을 좇지 말고 하는 동안의 몰입에 행복을 두라는 말이죠. 도착할 곳이 없으면 식을 것도 없으니까요.
처음엔 둘 중 하나가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두 사람은 같은 자리를 두고 싸운 게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서로 다른 걸 원하는 두 사람이 산다
여기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통찰이 길을 열어줍니다. 그는 우리 안에 '두 자아'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경험하는 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나중에 그 경험을 평가하고 이야기로 기억하는 '기억하는 나'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둘은 서로 다른 걸 원합니다.
이 렌즈를 끼면 안개가 걷힙니다. 그로버의 '갈망하라'는 단거리 승부에서 '기억하는 나'를 밀어 올리는 말이었습니다. 시험, 대회, 마감 같은 명확한 정상이 있을 때, 그 갈망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연료가 됩니다. 반면 '과정을 사랑하라'는 끝이 없는 매일을 사는 '경험하는 나'를 위한 말이었습니다. 둘 다 옳습니다. 단지 켜야 할 때가 다를 뿐입니다.
그러니까 답은 "과정이냐 결과냐"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애초에 틀린 질문입니다. 옳은 질문은 이겁니다. "지금 나는 언제, 누구를 위해 어느 엔진을 켜야 하는가."
그래서 허전함의 정체
이제 그 밤의 허전함이 설명됩니다. 우리는 단거리용 엔진, 즉 도착의 기쁨으로 매일의 삶까지 채우려 했던 겁니다. 갈망 엔진은 타이머가 달려 있습니다. 정상에 닿는 순간 연료가 끊기고, 그래서 비는 게 정상입니다. 매일의 행복은 원래 그 엔진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성취의 역설은 우리가 약해서 생기는 고장이 아니라, 단거리용 엔진을 평생에 걸어버린 설계의 실수다.
여기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결과를 향한 야망과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은 충돌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다른 자아에게 배치하면 됩니다. 야망 있는 사람이 불행할 이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한 가지만 바꿔보기
저는 이렇게 읽습니다. 평생 끌고 갈 일은 '도착하면 끝나는 목표'가 아니라 '끝나지 않는 방향'으로 다시 적어보는 겁니다. 똑같은 일도 표현을 바꾸면 엔진이 바뀝니다. '살 빼기'는 도착점이 있는 목표라 빼고 나면 식습니다. '몸을 즐겁게 쓰며 살기'는 끝이 없는 방향이라 식을 도착점 자체가 없습니다.
과정을 사랑하기로 한 것이 결과에 대한 야망을 버린 게 아닙니다. 같은 열정을 식지 않을 자리로 옮겨 놓은 것뿐입니다. 방식을 바꾼 것이지, 사랑을 포기한 게 아닙니다.
오늘 밤, 이루고도 또 허전하다면 자신을 탓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엔진이 잘못된 게 아닙니다. 다만 잠깐 멈춰서 물어보면 됩니다. 지금 이건 단거리인가, 아니면 평생 갈 방향인가. 그 한 번의 물음이 어느 엔진을 켤지를 정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