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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AI·자동화·지식시스템2026.06.2313분 읽기


지난겨울, 저는 화면 앞에서 같은 동작을 네 번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ChatGPT에게 상담 안내문을 부탁했습니다. 첫 문장이 어색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받았습니다. 이번엔 다른 문단이 흐트러졌습니다. 또 받았습니다. 매번 한 군데가 좋아지면 멀쩡하던 다른 군데가 무너졌습니다. 그 무한 반복에 지쳐 창을 닫으면서, 저는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이 물건은 아직 손이 많이 가는구나." 정확히 말하면, 저는 도구가 부족하다고 판정하고 있었습니다. 정작 부족했던 건 시키는 제 쪽이었는데도요.

네이선 헌터의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의 기술(The Art of Prompt Engineering with ChatGPT)』을 집은 건 그 무렵이었습니다.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2023년 초, ChatGPT가 세상에 나온 지 두 달밖에 안 됐을 때 열흘 만에 뚝딱 써서 아마존에 올린 책입니다. 저는 그 시기 링크드인에 넘치던 "GPT가 이것도 한다, 저것도 한다"는 자랑글 모음일 거라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헌터가 서문에서 먼저 못을 박더군요. 자기도 그 자랑글들이 지긋지긋했다고. 그래서 이 책에서는 'GPT가 무엇을 할 수 있나(what)'는 한 줄도 안 적고, 오직 '어떻게 시키나(how)'만 모았다고요. 제가 그날 밤 안내문 앞에서 헤맨 게 정확히 그 'how'였습니다.

이 책이 같은 시기 쏟아진 AI 책들과 갈라지는 지점이 여기입니다. 리드 호프먼의 『임프롬투』 같은 책이 'AI를 대하는 태도'를 다룬다면, 다시 말해 'AI를 신탁이 아니라 조교로 보라'는 마음가짐을 다룬다면, 헌터의 책은 그 조교에게 실제로 어떤 문장을 쳐 넣어야 하는가를 다룹니다. 한쪽이 운전 철학이라면, 이쪽은 핸들을 쥐는 법입니다. 헌터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AI 연구자가 아닙니다. 10년간 NGO에서 리더십을 가르치고, 5년간 기업 교육을 설계한 트레이너입니다. 그래서 책 전체가 강의가 아니라 핸즈온 가이드입니다. 장마다 기법을 소개하고, 실제 화면 캡처를 보여주고, 연습문제를 던집니다. "한자리에서 다 읽지 마세요. 한 장 읽고, 노트하고, 연습하고, 책 덮고 밖에 나가 원반이라도 던지고 오세요." 가르치는 사람만 할 수 있는 당부입니다.

책의 기둥은 네 개입니다. 반복으로 다듬기, 역할 부여하기, 예시로 학습시키기, 긴 글은 쪼개서 정복하기. 그런데 저는 이 네 개를 읽어 내려가다 어느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이게 전부 제가 15년간 아이들에게 하던 동작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깊이 판 첫 번째 기둥, 반복부터 보겠습니다. 헌터는 ChatGPT가 첫 시도에 완벽한 답을 주는 일은 드물다고 말합니다. 그걸 한계로 보지 말고 '좋음을 훌륭함으로 끌어올릴 기회'로 보라고 합니다. 그가 책 삽화 한 장을 얻으려고 출력 열에서 스무 장을 버렸다는 고백이 그래서 나옵니다. 핵심은 그가 정리한 반복 요청 여섯 가지 패턴입니다. 그중 제가 그날 밤 몰라서 헤맨 게 정확히 네 번째였습니다. '변화 속 안정성 유지하기.' 마음에 든 부분은 그대로 두고 한 군데만 고치고 싶을 때는, 어디를 바꿀지 정확히 짚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안 그러면 AI가 멀쩡한 다른 부분까지 건드린다고요. "첫 문장만 약간 더 캐주얼하게, 나머지는 그대로 둬." 저는 이걸 몰라서 매번 글 전체를 새로 받았던 겁니다.

그 문장을 읽는데 상담실 책상이 겹쳐 보였습니다. 제가 신입 강사에게 첨삭을 가르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이겁니다. "빨간 펜으로 글 전체를 그어버리지 마라. 아이가 잘한 한 문장은 살려두고, 고칠 한 군데만 짚어라." 잘한 걸 짓밟으면 아이는 다음에 펜을 안 든다는 걸 현장에서 배웠으니까요. 헌터가 AI에게 하라는 게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았습니다. 살릴 건 살리고, 한 군데만 핀포인트로. 헌터는 이걸 기계 다루는 기술로 적었지만, 저는 이게 사람 가르치는 기술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세 기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역할 부여하기는 아이에게 "오늘은 네가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이 문제를 동생한테 설명해봐" 하는 맞춤형 자극과 같았고, 예시로 학습시키기는 모범 답안 서너 개를 먼저 보여주고 패턴을 잡게 하는 모델링과 같았으며, 긴 글을 쪼개서 정복하기는 큰 과제를 작은 단계로 나눠 하나씩 올라가게 하는 스캐폴딩(쉽게 말하면, 비계를 세우듯 단계를 받쳐주는 일) 그 자체였습니다. 책의 숨은 한 수가 여기 있습니다. 헌터는 'AI를 잘 시키는 법'을 적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가 실제로 적은 건 잘 가르치는 사람이 이미 몸으로 아는 동작들이었습니다. 그가 연구자가 아니라 트레이너였기에 닿은 자리입니다. 코드를 먼저 배운 사람이라면 프롬프트를 '명령어'로 봤을 겁니다. 가르치는 사람으로 살아온 그는 프롬프트를 '한 명의 학생을 키우는 대화'로 봤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차갑지 않습니다.

여기서 이 책이 원장님께 건네는 진짜 선물이 드러납니다. AI 활용 팁이 아닙니다. 렌즈 하나가 뒤집힙니다. 우리는 그동안 AI를 '내가 배워야 할 낯선 신기술'로 봤습니다. 그래서 주눅이 들었습니다. 코딩도 모르고, 영어 용어도 어렵고, 젊은 사람들 따라가기 벅차다고요. 그런데 이 책을 덮고 나면 질문이 바뀝니다. 나는 이미 이걸 할 줄 안다. 매일 아이를 가르치며, 첨삭하며, 막힌 아이를 단계로 쪼개 끌어올리며 15년을 살았으니까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은 배워야 할 새 능력이 아니라, 이미 가진 교육 역량을 화면 앞으로 옮기는 일이었습니다. 원장님이 AI 앞에서 불리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유리한 자리에 있습니다.

물론 이 책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습니다. 저는 헌터의 정직함에서 오히려 신뢰가 갔습니다. 긴 글을 쪼갤 때 너무 잘게 나누면 조각마다 문체가 따로 놀고, 너무 크게 두면 정밀한 수정이 어렵다는 트레이드오프를 그는 숨기지 않습니다. 정답은 없으니 직접 실험해 자기 크기를 찾으라고 합니다. 요리 레시피를 받는 장에서도 칼로리 추정이 들쭉날쭉하고, 가진 재료와 사야 할 재료를 잘 못 나눈다는 한계까지 그대로 적습니다. 2023년 초의 책이라 GPT-3.5 시절 화면이고, 지금 모델은 그때보다 훨씬 똑똑해졌습니다. 그러나 기둥이 되는 네 동작은 모델이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좋은 첨삭이 종이에서 태블릿으로 바뀌어도 첨삭인 것과 같습니다.

이 책에는 제가 여기서 풀지 않은 결도 많습니다. "act as(~인 척 행동해)"라고만 시키면 AI가 그 역할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그 역할에 대해 설명만 늘어놓는 함정, 예시를 딱 하나만 주면 AI가 엉뚱한 디테일을 필수 요소로 오해하는 함정, 헌터가 자기 글 대부분을 다듬는 데 썼다는 'accessible(더 쉽게)'이라는 만능 한 단어. 그 장들은 직접 펴보실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다만 책장을 덮으며 제가 가장 오래 손에 쥔 한 줄만 옮겨두겠습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은 기계어가 아니라 가르치는 기술입니다. AI를 잘 시키는 사람은 명령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을 잘 키워본 사람입니다.

헌터는 마지막 장에서 한 가지를 고쳐 적습니다. 흔히들 "AI는 당신을 대체하지 않는다, AI를 쓰는 사람이 대체한다"고 말합니다. 헌터는 여기서 한 단어를 바꿉니다. 곧 AI를 '쓰느냐 안 쓰느냐'는 이메일을 쓰느냐만큼 당연한 일이 되고, 진짜 갈림길은 '얼마나 잘 쓰느냐'가 된다고요. 1977년 개인용 컴퓨터가 나왔을 때와 똑같다는 겁니다.

저는 그날 닫았던 창을 다시 열었습니다. 이번엔 글 전체를 새로 받지 않았습니다. 첫 문장만 짚어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멀쩡한 나머지는 그대로 살아 있었습니다. 신입 강사에게 빨간 펜을 가르치던 그 손으로, 저는 화면 앞에 똑같이 앉아 있었습니다. 새 기술을 배운 게 아니었습니다. 원래 하던 일을, 자리만 옮겨 한 것뿐이었습니다.

책 정보 제목: The Art of Prompt Engineering with ChatGPT 저자: Nathan Hunter 발행연도: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