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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독서노트2026.06.1815분 읽기

상세페이지는 우리가 자랑하고 싶은 걸 적는 종이가 아니라, 학부모가 자기 마음을 발견하게 하는 거울입니다.


신규반 모집 안내문 초안을 들고 온 원장님이 있었습니다. A4 한 장이 빼곡했습니다. 15년 경력, 명문대 출신 강사진, 자체 개발 교재, 소수 정예, 체계적인 커리큘럼. 한 줄 한 줄 다 사실이고 다 좋은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이를 학부모 입장에서 위에서 아래로 읽어 내려가다 저는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이 종이 어디에도 **"그래서 우리 아이가 어떻게 된다는 건지"**가 없었습니다. 자랑은 빼곡한데, 정작 학부모가 듣고 싶은 말 한 줄이 비어 있었던 겁니다.

저는 이 장면을 너무 자주 봅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면, 저 역시 한동안 그게 잘 쓴 안내문인 줄 알았습니다. 좋은 걸 빠짐없이 적는 게 친절이라고 믿었거든요. 그게 틀린 믿음이었습니다.

이 책을 집어 든 건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학원 모집 랜딩페이지, 설명회 안내문, 블로그 등록 안내 글. 이름만 다를 뿐 원장님들이 매달 붙잡고 끙끙대는 이 글들이, 결국 쇼핑몰에서 말하는 상세페이지와 한 몸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파는 글의 원리를 학원 모집 글로 통역할 수 있다면, 그 한 권은 충분히 값어치를 한다고 봤습니다.

저자 최홍희는 와디즈의 콘텐츠 디렉터입니다. 크라우드펀딩 1,400개 이상을 직접 열어 봤고, 누적 펀딩 매출이 300억에 이른다고 합니다. 펀딩이라는 게 뭡니까.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물건을, 만져 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오직 상세페이지 한 장으로 미리 결제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학원 신규반과 똑같습니다. 아직 다녀 보지 않은 학부모에게, 수업을 보여 주지도 않은 채, 글 한 장으로 등록을 결심하게 만드는 일이니까요. 저는 이 저자가 1,400번 반복한 그 일이, 원장님이 매번 처음처럼 헤매는 그 일과 완전히 같은 종류라는 데 끌렸습니다.

저는 처음엔 이 책이 디자인 기술서일 거라 기대했습니다. 폰트는 뭘 쓰고 이미지는 어디에 넣고 버튼은 무슨 색으로 하라는, 그런 손기술 모음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발견한 핵심은 디자인 이전, 글의 뼈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책의 척추를 한 문장으로 추리면 이렇습니다. 평범한 물건도 "특별하게 보이게" 만들어 파는 일은, 우리 제품의 USP를 골라 그것을 '원 메시지'라는 한 문장으로 압축하는 데서 시작한다.

USP는 우리 제품에만 있는, 사고 싶게 만드는 단 하나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원 메시지는 그 USP를 딱 한마디로 요약한 궁극의 한 문장이고요. 여기까지는 다른 마케팅 책에서도 비슷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이 갈라지는 지점은 USP를 어디서 찾느냐에 있습니다.

시중의 많은 책이 "당신 제품의 강점을 정리하라"고 말합니다. 강점. 그 단어가 함정입니다. 강점은 결국 파는 사람이 자랑하고 싶은 것이거든요. 그런데 최홍희는 USP를 절대 판매자 머릿속에서 꺼내지 말라고 못을 박습니다. 경쟁사 후기를 뒤지고, 카페와 블로그에서 "내돈내산" 같은 키워드로 진짜 구매자의 말을 모아, 고객의 입에서 USP를 건져 올리라는 겁니다. 그가 든 예가 아팠습니다. 어떤 선풍기를 "밤새 틀어 두는"으로 광고했는데, 정작 모터 소음이 커서 환불이 쏟아졌다는 이야기. 파는 사람은 좋다고 믿은 USP가, 사는 사람에겐 환불 사유였던 거죠.

여기서 제가 십수 년 상담실에서 본 것 하나를 보태고 싶습니다. 비슷한 규모의 학원 다섯 곳을 나란히 놓으면, 안내문은 신기할 만큼 똑같습니다. 다 소수 정예고, 다 체계적이고, 다 꼼꼼히 봅니다. 결과만 보면 다 비슷한 자랑입니다. 그런데 그 학원에 다니는 학부모들에게 "왜 여기 계속 보내세요"를 따로 물어보면, 다섯 곳의 대답이 전부 달랐습니다. 한 곳은 "선생님이 우리 애 기분을 안다", 한 곳은 "숙제 안 해 가도 혼내지 않고 같이 푼다", 한 곳은 "보내 놓으면 내가 잔소리를 안 해도 된다." 자랑은 복사가 되는데, 학부모가 실제로 지갑을 여는 진짜 이유는 학원마다 달랐던 겁니다. 최홍희가 후기를 뒤지라고 한 게 바로 이 지점입니다. 우리 학원의 USP는 안내문 안에 없습니다. 이미 우리 학원에 다니는 학부모의 입속에 있습니다.

원장님이 이 책에서 건질 첫 번째는 그래서 이 한 가지입니다. 모집 안내문을 새로 쓰기 전에, 재원생 학부모 다섯 분에게 "왜 우리 학원에 계속 보내시는지" 한 문장씩 받아 보는 일. 그 다섯 문장 중에 우리만의 USP가 들어 있고, 그걸 다듬으면 원 메시지가 됩니다. 책은 이 원 메시지를 만들 때 USP가 고객의 시간을 아껴 주는지, 돈을 아껴 주는지, 혹은 셀럽이 된 듯한 기분을 주는지 세 관점으로 비춰 보라고 합니다. 학원으로 옮기면 이렇게 됩니다. "보내 놓으면 잔소리를 안 해도 된다"는 후기는 학부모의 시간과 감정을 아껴 주는 USP고, 이걸 원 메시지로 다듬으면 "엄마가 채점표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는 학원"쯤이 됩니다. 경력 15년, 명문대 강사진 같은 자랑과는 완전히 다른 결의 한 문장이지요.

두 번째로 건질 것은 책의 중반을 떠받치는 사분면입니다. 저자는 가격을 세로축, 기능을 가로축으로 놓고 우리 제품을 네 칸 중 한 곳에 배치한 뒤, 그 위치마다 글의 전개 방식을 다르게 가져가라고 합니다. 비쌀수록 기능을 차분히 설명하는 자기소개형으로, 비싸지만 기능이 평범하면 감정을 건드리는 공감형으로 가는 식입니다. 학원은 대개 비싸고 무거운 고관여 상품입니다. 그러니 모집 글도 짧고 자극적인 후킹보다, 왜 이 가격이 합당한지를 차근히 풀어내는 쪽이 맞다는 뜻이지요. 다만 네 칸 각각을 어떤 문장으로 채우는지, 그 구체적인 손동작은 책 안에 예시와 함께 따로 있습니다. 여기서는 우리 학원이 어느 칸에 서 있는지부터 정해야 글의 톤이 정해진다는 것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책에는 그 밖에도 스크롤을 멈추게 하는 소제목 짓는 법, "일상" 같은 모호한 단어를 피하고 구체적 장면으로 바꾸는 카피의 기술, 모바일에서 콘텐츠와 여백을 샌드위치처럼 번갈아 배치하는 가독성 원칙까지 빼곡히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손기술들을 다 옮기는 건 이 글의 몫이 아니라고 봅니다. 손기술은 뼈대가 선 다음의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제 어깨를 정말로 내려가게 한 건 기술이 아니라, 책 마지막 장의 한 줄이었습니다. 상세페이지는 판매자가 아니라 고객 입장에서 쓰는 글이라는 문장. 너무 당연해서 그냥 지나칠 뻔한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문장 앞에서, 처음에 본 그 빼곡한 A4 안내문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 안내문이 죽은 글이었던 이유가 그제야 또렷해졌습니다. 그건 학부모를 위해 쓴 글이 아니라, 원장님 자신을 안심시키려고 쓴 글이었던 겁니다. "나 이만큼 갖췄어"를 종이에 적으면 마음이 놓이니까요. 그래서 자랑은 채우는 사람을 위로하고, USP는 읽는 사람을 움직입니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글입니다.

이게 이 책이 원장님께 주는 진짜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집 안내문을 보는 자리 자체를 옮겨 주는 것 말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그 종이를 우리가 가진 걸 자랑하는 전시장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자리에 서면, 모집 안내문은 학부모가 자기 마음속에 이미 있던 불안과 바람을 발견하게 해 주는 거울이 됩니다. 상세페이지는 우리가 자랑하고 싶은 걸 적는 종이가 아니라, 학부모가 자기 마음을 발견하게 하는 거울입니다. 거울에는 우리 얼굴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얼굴이 비쳐야 합니다.

물론 이 책을 덮어야 할 원장님도 있습니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특별하게 보이게" 만드는 기술서입니다. 저자 스스로도 이건 평범한 상품을 돋보이게 하는 법이라고 선을 긋습니다. 가르치는 실력이라는 알맹이가 부실한데 원 메시지부터 그럴듯하게 다듬으면, 그건 더 빨리 들통날 포장일 뿐입니다. 좋은 USP는 없는 실력을 지어내는 화장이 아니라, 있는 실력을 또렷이 비추는 조명이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이 책은 쇼핑몰 한 페이지에서 결제까지 끝내는 단발 거래를 전제로 쓰였습니다. 학원은 한 번 등록으로 끝나지 않고 몇 년을 함께 가는 관계 상품이지요. 그러니 책의 후킹 기술을 그대로 베끼다 보면 자칫 과장 광고로 흘러, 등록 후 신뢰를 잃는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화려하게 끌어오는 기술은 빌리되, 약속한 만큼은 반드시 지킨다는 전제 위에서만 그래야 합니다.

그러니 이번 주에 거창한 모집 전략을 새로 짤 것 없습니다. 재원생 학부모 다섯 분에게 "왜 우리 학원에 계속 보내시는지"를 딱 한 문장씩 물어보시면 됩니다. 그 다섯 문장을 책상에 펼쳐 놓고, 그중 가장 많이 겹치는 말 하나를 골라 보세요. 그게 그동안 우리가 안내문에 한 번도 안 적었던, 진짜 우리 학원의 한 문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이 책을 덮고 나서, "우리 학원이 뭐가 좋은지 어떻게 다 적지"를 묻기를 그만뒀습니다. 대신 이렇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학부모는, 자기 입으로 우리 학원을 뭐라고 부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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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희 저
스터디파이 강의 학습노트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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