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개원한 원장님 한 분이 저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설명회를 한 번 크게 열고 싶은데, 도무지 엄두가 안 나요. 한 시간을 무슨 내용으로 채우죠?" 저는 되물었습니다. "한 시간 말고, 5분짜리는 만드실 수 있으세요?" 원장님은 잠깐 멈칫하더니 "5분이야 뭐…" 하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 멈칫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은 무섭고, 5분은 우습습니다. 그런데 학원의 첫 자산은 거의 언제나 그 우스운 5분짜리에서 시작됩니다.
큰 것을 만들려다 아무것도 못 만든다
개원 초기 원장님들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등식이 박혀 있습니다. 큰 결과물은 큰 노력을 한 번에 들여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설명회도 통째로 기획하려다 못 열고, 블로그도 카테고리부터 완벽하게 짜려다 첫 글을 못 씁니다.
저는 이 등식을 '건축가의 착각'이라고 부릅니다. 건물을 지으려면 설계도부터 완성하고, 자재를 다 모으고, 한 번에 올려야 한다고 믿는 겁니다. 그런데 콘텐츠는 건물이 아닙니다. 콘텐츠는 농사에 가깝습니다. 큰 수확은 한 번에 만드는 게 아니라, 매일 한 줌씩 뿌린 것이 시간을 만나 알아서 자라는 겁니다.
제가 현장에서 본 가장 흔한 장면이 이겁니다. 노트에 '설명회 기획'이라고 제목만 적어두고, 그 아래 빈칸을 몇 주째 못 채우는 원장님. 빈칸이 무서워서 노트를 덮습니다. 그분에게 부족한 건 기획력이 아니었습니다. 시작하는 단위가 너무 컸던 겁니다.
큰 자산은 만드는 게 아니라 제조된다
여기서 제 생각의 핵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신규 학원에 자산이 없는 건 사실입니다. 모인 학생도, 쌓인 후기도, 큰 설명회도 없습니다. 그런데 자산이 없다는 말과 자산을 못 만든다는 말은 다릅니다. 큰 자산은 만드는(build) 게 아니라 제조되는(manufacture) 거니까요.
만든다는 건 없던 걸 한 번에 짓는 일입니다. 제조한다는 건 이미 가진 작은 재료를 변환기에 넣어 다른 형태로 바꾸는 일입니다. 신규 학원에는 만들 재료는 없어도, 제조할 작은 단위는 이미 있습니다. 매일의 수업, 한 번의 행사, 만만한 청중. 문제는 이걸 자산으로 바꾸는 변환기를 안 돌린다는 것뿐입니다.
이 변환기에는 손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쌓는 손, 하나는 쪼개는 손입니다.
쌓는 손부터 보겠습니다. 매일 5분짜리 입시 강연을 하나 만듭니다. 오늘은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세특이 왜 중요한가', 내일은 '중학교 내신과 고등 내신이 다른 점'. 이걸 열두 개 쌓으면 어느 순간 한 시간짜리 설명회의 목차가 손에 들려 있습니다. 설명회는 기획한 게 아니라 적립된 겁니다. 주제가 막히면 입시 책 한 권을 사서 챕터별로 요약해 풀면 됩니다. 한 권이면 5분짜리 스무 개가 나옵니다.
쪼개는 손은 반대 방향입니다. 마켓데이든 작은 간담회든, 행사 하나를 준비·당일·후기 세 편으로 가릅니다. "다음 주에 이런 행사를 엽니다"(기대), "오늘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현장), "이런 반응이 있었습니다"(여운). 사건은 하나인데 글은 셋이 되고, 덤으로 기대에서 현장을 거쳐 여운으로 이어지는 감정 곡선까지 생깁니다. 올릴 글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한 사건을 안 쪼갠 것뿐입니다.
이 두 손은 정반대로 움직이지만 같은 문제를 풉니다. 빈손이라는 문제 말입니다. 한 손은 부스러기를 모아 크게, 한 손은 큰 사건을 잘게. 그리고 둘은 맞물려 돕니다. 적립해서 만든 설명회를 다시 준비·당일·후기로 쪼개 글감으로 쓰고, 그 글들이 또 쌓여 다음 자산이 됩니다. 한 바퀴가 돌기 시작하면 콘텐츠가 마르지 않습니다.
이건 학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잠깐 학원 밖으로 시선을 돌려보겠습니다. 제가 이 변환기를 학원에서만 봤다면 그냥 마케팅 팁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가진 게 없는 모든 시작점이 똑같이 이 변환기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혼자 글을 쓰는 사람을 보면, 매일의 짧은 메모를 모아 전자책을 냅니다. 작은 단위를 쌓아 큰 자산으로 바꾸는 같은 손입니다. 신생 브랜드는 고객 후기 한 줄을 광고 소재로 변환합니다. 빌린 신뢰를 내 자산으로 귀속시키는 손입니다. 심지어 제가 지식을 정리하는 이 작업장도 똑같습니다. 책 한 권을 잘게 쪼개 카드로 만들고, 카드를 모아 한 편의 통찰로 합칩니다. 쪼개고 쌓는 두 손 말입니다.
그러니 "나는 학원이라 다르다"고 생각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자원이 없는 모든 시작은 이 한 가지 동작으로 출발합니다. 이미 가진 작은 것을 자산으로 바꾸는 변환기를 돌리는 일. 이건 업종의 문제가 아니라 시작하는 자의 보편 문법입니다.
진짜 적은 자산 부족이 아니라 완벽주의입니다
그런데 이 변환기를 켜기도 전에 멈추는 지점이 있습니다. 가장 흔한 자리가 블로그 카테고리입니다. 첫 글을 쓰기 전에 분류부터 완벽하게 짜려는 손 말입니다.
여기서 원장님이 들으면 어깨가 조금 내려갈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블로그가 안 풀리는 건 원장님이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잘하려고 해서입니다. 완벽한 구조를 짜야 한다는 책임감이, 역설적으로 첫 동작을 막고 있는 겁니다. 학부모는 사실 카테고리를 보지 않습니다. 모바일에서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분들은 글 한 편을 보고 "이 학원, 우리 아이를 알겠다" 싶으면 전화를 겁니다. 분류가 아니라 게시물이 일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카테고리를 세 갈래로 가볍게 닫으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소개, 실적과 일상, 소식과 정보. 끝입니다. 이건 정리법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미완성을 허용하는 일입니다. 완벽한 구조를 짜려는 손을 일부러 멈추고, 그 에너지를 5분짜리 한 편으로 옮기는 겁니다.
소심한 분일수록 이 대목에서 망설입니다. 저도 압니다, 무섭다는 거. 그런데 배짱이 생겨서 시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두려우면서도 5분짜리 하나를 올린 사람이, 그걸 열두 번 반복하고 나서야 설명회 무대에 설 배짱을 얻습니다. 배짱은 동작의 조건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순서가 거꾸로였던 겁니다.
그래서 원장님께 이게 무슨 뜻이냐면
정리하겠습니다. 신규 학원의 콘텐츠는 큰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작은 것을 제조하는 일입니다. 내일 당장 하실 수 있는 건 세 가지입니다.
첫째, 블로그 카테고리를 세 갈래로 닫고 더 이상 손대지 마십시오. 구조를 짜는 손을 멈추는 게 출발점입니다.
둘째, 오늘 5분짜리 입시 이야기 하나를 만드십시오. 우스워도 됩니다. 열두 개가 모이면 설명회 목차가 됩니다. 그게 쌓는 손입니다.
셋째, 다음에 작은 행사가 있으면 준비·당일·후기 세 편으로 쪼개십시오. 글감이 세 배가 됩니다. 그게 쪼개는 손입니다.
처음 그 원장님은 결국 5분짜리부터 시작했습니다. 몇 달 뒤 다시 만났을 때, 노트의 '설명회 기획'이라는 빈칸은 어느새 채워져 있었습니다. 본인이 한 번에 채운 게 아니라, 매일 한 줄씩 쌓인 것이 어느 날 보니 한 시간 분량이 되어 있던 겁니다.
설명회가 없어서 못 여는 게 아니었습니다. 매일 5분짜리를 안 쌓았을 뿐입니다. 큰 무대는 용기를 낸 사람이 한 번에 만드는 게 아니라, 작은 동작을 멈추지 않은 사람에게 어느 날 제조되어 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