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쌓이면 직관이 더 정확해진다고 믿으십니까.
저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15년 동안 수천 명의 학부모를 만나면서, 어떤 분이 등록할지 어떤 분이 망설일지, 상담 자리에서 보이는 것들이 생겼습니다. 그 패턴 인식을 경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믿음이 흔들린 날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고민하던 학부모가 마침내 "한번 해볼게요"라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속으로 확신했습니다. 역시, 잘 읽었다. 두 달 뒤 그 분이 나갔습니다. 나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좀 더 생각해볼 걸 그랬어요."
그것이 처음도 아니었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카너먼이 그 이유를 쓰고 있었습니다. 인지심리학자인 그는 동료 아모스 트버스키와 14년을 함께 연구했습니다. 그 연구로 카너먼은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심리학자가 경제학 분야의 최고 권위를 받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밝힌 것은 하나였습니다. 인간의 사고는 빠른 직관(시스템 1)과 느린 숙고(시스템 2)로 나뉘고, 대부분의 판단은 시스템 1이 담당하며, 시스템 1은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틀린다. 그리고 경험이 쌓인다고 시스템 1이 더 정확해지지는 않는다.
이것을 읽고 멈췄습니다.
이 책이 2011년 출간 이후 전 세계에서 수백만 부 팔린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금융투자자도, 의료진도, 학원 원장도 읽다가 같은 자리에서 멈춥니다. "이게 나 이야기다." 그 멈춤이 불편하고, 그래서 기억에 남습니다. 워런 버핏부터 버락 오바마까지 이 책을 언급한 것도 그 이유입니다. 이들이 공유한 것은 카너먼의 명성이 아니라, 자기 판단에 의문을 품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내가 "패턴을 읽는다"고 느꼈던 것은, 맞았던 순간의 기억이 틀렸던 순간의 기억보다 선명하기 때문일 수 있었습니다. 카너먼은 이것을 WYSIATI라고 부릅니다. What You See Is All There Is. 내가 가진 기억이 전부라고 믿는 것. 맞았을 때는 기억하고 틀렸을 때는 "예외"로 처리하면, 시간이 갈수록 확신이 쌓입니다. 그것이 경험이 아니라 착각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착각이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의 핵심입니다.
이 책에서 원장에게 가장 날카롭게 닿는 개념을 하나 꼽으라면 손실 회피입니다. 카너먼은 실험을 통해 사람이 같은 크기의 이익과 손실을 다르게 느낀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손실이 이익보다 약 2배 강하게 작동합니다. 처음 이 내용을 읽었을 때는 상담 방식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한 장을 더 읽고 나서 제 자신의 의사결정이 보였습니다.
새 방향으로 바꾸기를 주저하는 것, 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손을 못 대는 것. 이것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손실 회피라면, 자책할 이유가 줄어듭니다. 그리고 처방이 달라집니다. "더 용기를 내자"가 아니라, 내가 느끼는 손실의 크기가 실제인지 한 번 물어보는 것이 됩니다. 학원에서 15년간 보면, 새 프로그램 도입을 주저하는 원장님의 망설임과 등록을 결정하지 못하는 학부모의 망설임은 구조가 같습니다. 이 책이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 책에는 기준점 효과와 절정-대미 법칙도 있습니다. 처음 제시되는 숫자가 이후 모든 판단을 끌어당기는 원리, 사람이 경험의 끝 순간을 가장 강하게 기억하는 원리. 이것들이 상담과 학원 경험 설계에 어떻게 닿는지는, 각자의 현장에서 읽으면 보입니다.
카너먼은 결론에서 직접 씁니다. "이 책을 읽어도 당신의 시스템 1은 바뀌지 않습니다." 편향을 아는 것과 편향에서 벗어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카너먼은 이 점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 솔직함이 오히려 이 책을 신뢰하게 만들었습니다. 알면 모두 해결된다는 자기계발의 언어가 아니라, 안다는 것이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바꾸지 않는지를 동시에 말해주는 책입니다. 이것은 카너먼 본인도 예외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40년간 직관의 오류를 연구한 사람도, 자신의 직관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합니다.
저는 이 책을 덮고 나서 처음으로 제가 틀렸던 날들을 세어봤습니다. 맞았던 날이 아니라.
그 숫자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난 뒤, 다음 상담이 달라졌습니다.
생각에 관한 생각 / Thinking, Fast and Slow / 대니얼 카너먼 저 / 이창신 역 / 김영사 /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