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마치고 나온 원장님이 그러더군요. "퇴원 한 명 났다고 그날 하루를 통째로 날려요. 머릿속에서 안 떠나요." 그날 등록 두 건이 들어왔는데도, 머릿속을 차지한 건 나간 한 명이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그 퇴원이 원장님을 흔든 건가요, 아니면 그 퇴원에 원장님이 붙인 생각이 원장님을 흔든 건가요?" 대부분 잠깐 멈칫하십니다. 한 번도 둘을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으셨던 거죠. 퇴원과 괴로움이 한 덩어리로 붙어 있었으니까요.
흔들리는 건 성격 탓이 아닙니다
원장님들은 자주 자책합니다. "제가 멘탈이 약해서요." "원장이 이렇게 흔들리면 안 되는데." 마치 흔들리는 게 자기 성격의 결함인 것처럼요.
저는 그 말을 들을 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흔들리는 건 원장님 성격 탓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극이 오면 흔들립니다. 진짜 문제는 흔들림이 아니라, 흔들린 뒤에 그것을 다스릴 절차가 없다는 것입니다. 절차가 없으니 흔들림이 하루 종일, 새벽 두 시까지 머릿속을 돌고 도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보통 정반대 방향으로 갑니다. 흔들리면 뭔가를 더 합니다. 전단지를 더 돌리고, 이벤트를 더 열고, 커리큘럼을 하나 더 붙입니다. "또 뭘 해야 하나"가 흔들림에 대한 본능적 반응이죠. 그런데 더하기로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흔들림은 행동이 부족해서 오는 게 아니라, 다스리는 절차가 없어서 오기 때문입니다.
2000년 전, 전쟁터에서 매일 마음을 다스린 사람
이 절차를 가장 집요하게 연습한 사람이 있습니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입니다. 그가 남긴 명상록은 사실 책으로 내려고 쓴 글이 아니었습니다. 전쟁터의 막사에서, 매일 밤 자기 자신에게만 쓴 일기였습니다.
황제이자 제국의 최고 권력자가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서 매일 마음을 다잡았을까요. 그는 알았던 겁니다. 권력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일들이 매일 쏟아진다는 것을요. 그래서 그는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흔들릴 때 자기에게 돌려보는 한 문장을 반복해서 적었습니다. "나를 흔드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내가 붙인 판단이다."
여기서 저는 무릎을 쳤습니다. 황제가 막사에서 쓴 자기 처방전과, 상담과 상담 사이에 마음을 추스르는 원장님의 1분은 정확히 같은 장르의 글이라는 것을요. 둘 다 통제할 수 없는 일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는 사람의 기록입니다. 2000년의 시차가 무색할 만큼요. 그 황제의 마음 기술이 오늘 원장님의 등록률 불안에 그대로 작동합니다.
"이건 내 것인가?"라는 한 줄의 잣대
명상록에서 제가 원장님께 가장 먼저 권하는 건 딱 하나입니다. 흔들림이 오면, 더하기를 멈추고 먼저 가르라는 것입니다. "이건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인가?"
퇴원 두 명이 났습니다. 이건 사건입니다. 이미 일어났고, 내 손을 떠났습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나는 무능하다"는 생각, 이건 내가 붙인 해석입니다. 떼어낼 수 있습니다. 내 것입니다. 종이 한 장을 꺼내 왼쪽에는 사실(퇴원 2명)을, 오른쪽에는 내가 붙인 해석(나는 무능하다)을 나눠 적어보십시오. 신기하게도, 둘을 떼어 적는 순간 괴로움의 절반이 빠집니다. 괴로움은 사건이 아니라 사건에 붙인 도장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이게 왜 효과가 있을까요. 우리 머리는 사건과 해석을 한 덩어리로 처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퇴원했다"가 곧장 "나는 망했다"로 자동 연결됩니다. 종이에 둘을 나눠 적는 행위는 그 자동 연결을 일부러 끊는 장치입니다. 손으로 쓰는 1분이, 머릿속 자동반응에 제동을 거는 겁니다.
종이를 꺼낼 상황이 아니라면, 속으로라도 두 문장으로 나눠 말해보십시오. "사실은 퇴원 두 명이다. 내가 붙인 건 무능하다는 해석이다." 그리고 내일 아침, 책상 앞에 앉아 이렇게 한 줄만 적어보십시오. "오늘 나를 흔들 수 있는 일이 온다. 그건 사건이고, 내 다음 행동만 내 것이다." 흔들림이 오기 전에 미리 새겨두면, 막상 그 일이 와도 충격이 한결 작아집니다. 황제가 매일 아침 했던 것이 바로 이 예방접종이었습니다.
평정심은 타고나는 성격이 아니라 반복하는 절차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시고 "그래도 나는 원래 예민해서"라고 생각하셨다면, 바로 그 지점을 짚고 싶습니다.
명상록을 읽으며 제가 가장 크게 놓아버린 착각이 하나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원래 그런 기질로 태어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황제조차 매일 밤 같은 문장을 다시 적었습니다. 한 번 깨달아서 끝난 게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돌려보는 절차로 만들어서 평생 연습한 겁니다. 평정심은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절차였던 거죠.
이게 원장님께 무엇을 뜻할까요. 흔들림을 없애려 애쓰지 않으셔도 된다는 뜻입니다. 흔들림은 사람이라면 없앨 수 없습니다. 대신 흔들림을 통과시키는 절차를 가지면 됩니다. 가르고, 해석을 떼고, 지금 할 수 있는 한 가지에 손을 대고, 1분 물러나 마음을 리셋하고 다음 상담으로 돌아오는 것. 이건 기질이 아니라 동선입니다. 동선은 연습하면 몸에 붙습니다.
긍정적인 원장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흔들리지 않는 원장으로 태어난 사람도 없습니다. 매번 흔들리면서도, 매번 같은 절차로 그것을 통과시킨 원장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퇴원 한 명에 하루를 날린 오늘의 자신을 너무 탓하지 마십시오. 흔들린 게 잘못이 아닙니다. 흔들림과 자신을 한 덩어리로 붙여둔 채, 그것을 떼어낼 절차를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 뿐입니다. 오늘부터 그 절차를 하나씩 연습하시면 됩니다. 황제도 그렇게 매일 다시 시작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