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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독서노트2026.06.1915분 읽기

경쟁은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이겨도 남는 게 없는 게임이었습니다.


같은 건물에 학원이 둘 있으면, 원장님들은 본능적으로 옆집을 봅니다.

저 집은 얼마 받나. 저 집은 무슨 특강을 열었나. 저 집이 셔틀을 늘렸다더라. 그래서 우리도 가격을 조금 내리고, 비슷한 특강을 걸고, 셔틀 시간표를 맞춥니다. 그렇게 두 학원은 점점 닮아갑니다. 1년이 지나면 두 곳 다 더 바빠졌는데, 통장은 더 가벼워져 있습니다. 저는 이걸 오랫동안 '열심히 한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싸게, 더 많이, 옆집보다 한 발 앞서려고 애쓴 끝의 자연스러운 피로라고요.

피터 틸의 『제로 투 원』은 이 피로의 정체를 한 문장으로 갈라놓습니다. 그건 열심히 한 결과가 아니라, 경쟁이라는 함정에 빠진 결과였습니다.

틸은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역발상가입니다. 페이팔을 만들었고, 페이스북에 처음 투자한 외부 투자자였습니다. 이 책은 그가 스탠퍼드에서 한 창업 강의 노트가 출발점인데, 흥미로운 건 그가 이 책을 쓴 목적입니다. 그는 "성공하는 공식 같은 건 없다"고 못부터 박습니다. 공식을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남들과 정반대로 생각하는 연습을 시키려고 쓴 책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따라 할 체크리스트보다, 머리를 한 번 뒤집는 질문이 더 많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책이 또 하나의 실리콘밸리 성공담일 거라 기대하고 폈습니다. 천재들이 어떻게 유니콘을 만들었나 하는 무용담. 그런데 제가 책장을 넘기다 멈춘 건, 성공담이 아니라 경쟁을 정면으로 의심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우리는 경쟁을 미덕으로 배웁니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실력이 늘고, 시장이 건강해지고, 이긴 자가 보상을 받는다고요. 학교가 등수로, 입시가 경쟁률로 그걸 매일 가르칩니다. 틸은 이 믿음을 정면으로 칩니다. 그가 보기에 경쟁은 경제 개념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즉 우리 머릿속에 주입된 강박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씁니다. "경쟁을 더 많이 할수록 우리가 얻는 것은 오히려 줄어든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그가 든 숫자를 보면 등골이 서늘합니다. 항공사들은 매년 수천억 달러어치의 가치를 만들어 냅니다. 사람들을 멀리, 빠르게 실어 나르니까요. 그런데 그 산업이 승객 한 명에게서 남기는 돈은 37센트뿐입니다. 다들 비슷한 비행기로 비슷한 노선을 다투니까, 만든 가치가 가격 경쟁으로 다 새어 나가는 겁니다. 반대로 구글은 항공사보다 적은 가치를 만들지만, 매출의 21%가 고스란히 이익으로 남습니다. 검색이라는 영역을 사실상 혼자 가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 책의 핵심 한 수가 나옵니다. 가치를 만드는 것과, 만든 가치를 내가 갖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틸의 문장으로는 이렇습니다. "가치를 창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창출한 가치의 일부를 계속 보유할 수 있어야 한다." 항공사는 엄청난 가치를 만들고도 한 푼도 못 챙기고, 구글은 그걸 다 챙깁니다. 차이는 단 하나, 경쟁 속에 있느냐 아니냐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학원 시장이 그대로 겹쳐 보였습니다. 동네 수학 학원은 분명히 가치를 만듭니다. 아이 성적을 올리고, 부모의 불안을 덜어 줍니다. 그런데 옆 학원과 똑같은 과목, 똑같은 교재, 비슷한 가격으로 붙는 순간, 그 만든 가치는 '서로 깎아 주는 경쟁' 속으로 다 새어 나갑니다. 딱 항공사입니다. 열심히 가르치는데 남는 게 없는 이유가 거기 있었습니다. 능력이 모자란 게 아니라, 이겨도 남는 게 없는 게임의 판 위에 서 있었던 겁니다.

틸이 경쟁의 어리석음을 설명하며 든 비유 하나가 오래 남습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을 가리킵니다. 두 거인이 서로를 이기겠다고 검색과 운영체제에서 정면으로 부딪치는 동안, 정작 두 회사를 모두 제치고 시대를 가져간 건 옆에 있던 애플이었다는 겁니다. 틸은 갈등을 셰익스피어식으로 봅니다. 사람들은 너무 달라서 싸우는 게 아니라, 너무 비슷해서 싸운다는 거죠. 로미오와 줄리엣의 두 가문처럼요. 경쟁에 빠진 두 학원이 점점 닮아 가는 게 바로 이겁니다. 서로를 이기려고 들여다보는 사이, 둘 다 똑같아지고, 둘 다 가난해집니다.

그렇다면 답은 뭘까요. 틸의 처방은 단순하고 과격합니다. 싸우지 마라.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 대신 아무도 손대지 않은 아주 작은 영역을 골라, 거기서 사실상 혼자가 되라는 겁니다. 그는 이걸 0에서 1을 만드는 일이라고 부릅니다. 남이 한 걸 하나 더 복제하는 게 1에서 2, 3으로 가는 일(수평적 진보)이라면, 아무도 안 한 걸 처음 만드는 게 0에서 1로 가는 일(수직적 진보)입니다. 진짜 부는 후자에서만 나온다고 그는 말합니다.

여기서 원장님이 가장 오해하기 쉬운 지점을 짚고 싶습니다. "작은 영역을 독점하라"는 말을, 흔히 시장을 크게 잡아야 유리하다는 통념과 부딪친다고 느끼실 겁니다. 그런데 틸은 정반대로 못을 박습니다. "모든 신생기업은 아주 작은 시장에서 시작해야 한다. 너무 작다 싶을 만큼 작게." 그가 큰 시장의 1%를 노리는 걸 적신호라고 부른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페이스북은 전 세계가 아니라 하버드 한 곳에서 시작했고, 아마존은 만물상이 아니라 책 하나로 시작했습니다. 작은 연못에서 먼저 가장 큰 물고기가 된 다음, 옆 연못으로 천천히 넘어간 겁니다.

저는 이 원리가 학원에서 정확히 똑같이 작동하는 걸 현장에서 봤습니다. 제가 15년간 지켜본 오래가는 학원들은 시장을 넓게 잡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무섭도록 좁게 잡은 곳이었습니다. 한 원장님은 "수학을 못하는 아이"가 아니라 "수학이 무서워서 아예 펜을 못 드는 아이"만 받겠다고 했습니다. 손님을 왜 줄이냐고 다들 말렸습니다. 그런데 3년 뒤, 그 동네에서 '수학 공포증 아이를 맡기는 곳'은 그 학원 하나뿐이었습니다. 비교 대상이 없으니 가격을 깎아 달라는 말이 안 나왔고, 옆 학원이 무슨 특강을 걸든 그 원장님은 들여다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틸의 표현을 빌리면, 그분은 아주 작은 시장 하나를 독점한 겁니다.

여기서 원장님께 렌즈 하나를 바꿔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보통 차별화를 '남들보다 더 잘하기'로 이해합니다. 더 좋은 강사, 더 싼 가격, 더 많은 특강. 그런데 그건 결국 같은 트랙 위에서 한 발 앞서려는 경쟁일 뿐입니다. 트랙이 같으면, 앞서도 남는 게 없습니다. 틸이 알려 준 차별화는 '더 잘하기'가 아니라 **'다른 트랙으로 옮기기'**입니다. 옆 학원과 같은 트랙에서 1등을 다투는 대신, 옆 학원이 아예 뛰지 않는 트랙을 하나 만들어 거기서 유일해지는 것. 이렇게 보면 원장님이 매일 들여다보던 옆집은 사실 봐야 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봐야 할 건 옆집이 아니라, 아무도 안 받는 아이가 누구인가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의 모든 길은 한 질문으로 모입니다. 틸이 면접에서 즐겨 묻는다는 그 질문이요. "정말 중요한 진실인데, 남들이 당신한테 동의해 주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는 좋은 답이 늘 "대부분은 X라 믿지만, 진실은 정반대다"라는 형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입니다. 천재적인 아이디어보다 훨씬 희귀한 건, 그 답을 실제로 밀고 나갈 용기라고요. 학원으로 바꿔 보면 이렇습니다. "다들 모든 학년, 모든 과목을 받아야 산다고 믿지만, 진실은 하나만 깊게 파야 산다"고 믿고 손님을 줄일 용기. 그게 0에서 1입니다.

물론 한계도 솔직히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이 책은 학원 같은 동네 서비스업을 위해 쓰인 책이 아닙니다. 틸이 말하는 독점의 무기들, 예컨대 한 번 만들면 한없이 복제되는 소프트웨어의 위력은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학원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틸 본인도 요가 스튜디오나 식당처럼 손이 많이 가는 서비스업은 독점을 만들기 어렵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니 이 책에서 가져올 것은 기법이 아니라 사고의 뼈대입니다. 경쟁을 당연한 공기로 마시던 머리를, 한 번 거꾸로 돌려 보는 일이요.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면, 이 책은 그가 강의에서 펼친 생각의 절반쯤만 펼쳐 봐도 충분히 묵직합니다. 운과 비밀, 사람과 기계 같은 뒷장의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또 한 권의 독서를 부릅니다.

저는 이 책을 덮고 나서, 오래 들고 있던 질문 하나를 바꿨습니다. 예전의 저는 "어떻게 하면 옆 학원을 이길까"를 물었습니다. 이 책을 읽은 뒤로는 "옆 학원이 절대 안 건드릴 한 가지는 뭘까"를 묻습니다. 같은 시장을 두고 칼을 가는 대신, 나만의 작은 시장을 그리기 시작한 겁니다. 신기하게도, 질문을 바꾸자 옆집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확 줄었습니다.

경쟁은 이기는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이겨도 남는 게 없는 게임이었습니다. 그걸 가장 빨리 깨닫는 사람이, 결국 혼자 남아 그 영역의 1이 됩니다.


제로 투 원 / Zero to One / 피터 틸·블레이크 매스터스 저 / 한국경제신문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