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문항. 7점 척도. 그리고 점수 하나.
미국의 조직개발 학자 마빈 와이스보드는 회사가 건강한지를 여섯 칸으로 나눠 보는 진단법을 만들었습니다. 목적, 구조, 리더십, 관계, 보상, 지원체제. 막연하게 "요즘 회사가 잘 안 돌아간다"고 느끼는 사장에게, 그는 느낌 대신 칸을 줬습니다. 어느 칸의 점수가 나쁜지 보면, 어디부터 손대야 하는지가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손에 든 이 책은, 그 여섯 칸 모델을 학원이라는 작은 조직에 옮겨 심은 자가진단 도구집입니다. 2014년에 나온, 저자 이름도 출판사도 분명치 않은 컨설팅 워크북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큰 기대가 없었습니다. 흔한 체크리스트 모음이려니 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집은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상담 자리에서 "우리 학원이 요즘 뭔가 안 돌아가는 것 같은데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너무 자주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그 막막함을 압니다. 학원 전체가 무겁게 느껴지는데, 정작 무엇을 고쳐야 할지는 안갯속입니다. 손댈 데가 너무 많아 보이면, 결국 아무 데도 손을 못 댑니다.
그런데 이 워크북이 던지는 한 문장이 저를 멈춰 세웠습니다. 막연한 불안은 손댈 수 있는 데가 없다. 영역으로 쪼개 점수로 만들고, 그림으로 그려야 비로소 약점의 위치가 보인다. 이게 이 책 세 장(章)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믿음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영리한 장치는 두 번째 진단지에 있습니다. 학원 운영을 학습관리, 운영관리, 상담관리, 마케팅홍보 네 영역으로 나눕니다. 각 영역에 25개 질문을 던지고 점수를 더합니다. 그리고 그 네 점수를 네 방향 축에 찍어 선으로 잇습니다. 그러면 사각형이 하나 그려집니다.
크게 그려질수록 잘 굴러가는 학원이고, 어느 한 변이 안으로 푹 들어가 찌그러졌다면, 거기가 새는 곳입니다. 점수표의 숫자는 머릿속에서 흩어지지만, 찌그러진 사각형은 눈에 박힙니다. 상담관리 쪽이 움푹 들어간 사각형을 보고 나면, 더 이상 "학원 전체가 문제"라고 말할 수 없게 됩니다. 문제는 학원 전체가 아니라 그 한 변이었던 겁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직접 반응 마케팅의 오래된 격언이 떠올랐습니다. "측정되는 것만 관리된다." 광고 한 통이 몇 명을 데려왔는지 숫자로 찍어야 광고를 고칠 수 있다는 그 원칙을, 이 책은 마케팅이 아니라 조직과 운영 전체에 적용한 셈입니다. 느낌은 고칠 수 없지만 점수는 고칠 수 있습니다. 진단지가 하는 일은 결국 느낌을 점수로 번역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흔한 자가진단 도구가 절대 못 하는 한 수가 숨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진단지, 조직을 일곱 영역으로 보는 35문항짜리 진단이 그렇습니다. 보통의 자가진단은 원장이 답합니다. 그런데 이 진단지는 원장이 아니라 강사와 직원의 입장에서 답하게 만듭니다.
이 한 줄을 발견하고, 저는 이 책을 다시 봤습니다. 저자가 어떤 경험을 통과했길래 이런 설계에 닿았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조직의 진짜 상태는 리더의 눈에는 안 보입니다. 리더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강사가 왜 떠나는지를 원장 자신에게 물으면, 원장의 사각지대가 그대로 답이 됩니다. 그래서 이 진단은 답하는 눈을 바꿔버립니다. 내 조직을 내 눈이 아니라 직원의 눈으로 보게 만드는 것. 카너먼이 말한 WYSIATI, 보이는 게 전부라고 믿는 착각을 도구의 설계로 우회한 셈입니다. 저자는 아마 책상에서가 아니라, 영문도 모른 채 강사를 떠나보낸 원장들 곁에서 이 설계에 닿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 진단지를 손에 쥔 원장은 무엇을 하면 될까요. 저라면 이번 주에 네 영역 진단지 하나만 풀어보겠습니다. 점수를 더하고, 종이에 네 점을 찍어 잇습니다. 찌그러진 변이 어디인지만 확인합니다. 그게 다입니다. 한 변만 정해지면 다음 한 달이 할 일이 정해집니다. 학원 전체를 고치려던 사람이, 한 변을 고치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여기서 제가 원장님께 정말 드리고 싶은 말은 따로 있습니다. 학원이 안 돌아가는 것 같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내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원장 자질이 없나, 사업이 안 맞나, 자책의 칼끝이 늘 자기를 향합니다. 그런데 이 진단지는 그 자책이 틀렸다고 말해줍니다. 문제는 당신이라는 사람 전체가 아니라, 네 변 중 하나입니다. 당신이 부족한 게 아니라, 상담관리 한 칸이 약한 겁니다. 막연한 죄책감이 구체적인 한 칸으로 줄어드는 순간, 어깨에서 짐 하나가 내려갑니다.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칠 수 있는 크기로 보일 때만 고쳐집니다.
저는 현장에서 이런 원장님을 자주 봅니다. 수업을 정말 잘하시던 분이 학원이 커지면서 수업에서 손을 떼게 됩니다. 그러면 "나는 이제 내가 좋아하던 걸 못 한다"고 괴로워하십니다. 그런데 이 진단지로 보면, 그분이 약한 변은 학습관리가 아니라 운영관리이거나 조직입니다. 좋아하던 수업을 놓는 게 후퇴가 아니라, 약한 변을 채우러 자리를 옮긴 것이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방식을 바꾸는 일은 포기가 아닙니다. 진단지는 그 옮겨갈 자리가 어디인지를 점수로 알려줄 뿐입니다.
물론 이 책은 한계가 분명합니다. 이건 두꺼운 경영서가 아니라 22쪽짜리 워크북입니다. 왜 그 영역이 중요한지, 약한 변을 어떻게 채우는지에 대한 깊은 설명은 거의 없습니다. 진단은 위치를 알려줄 뿐, 처방까지 주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자가진단인 만큼, 내가 나를 후하게 채점하면 사각형은 거짓으로 커집니다. 도구는 정직한 손에서만 작동합니다. 1페이지 마케팅 플랜 같은 책이 "무엇을 어떻게 하라"까지 끌고 간다면, 이 책은 딱 "어디가 새는지"에서 멈춥니다.
그런데 저는 그 멈춤이 오히려 이 도구의 미덕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어디가 새는지를 모른 채 시작하는 개선만큼 헛된 게 없으니까요. 이 워크북을 덮고 나서, 저는 제 일을 들여다보는 방식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요즘 잘 안 풀린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려 할 때, 이제는 묻습니다. 네 변 중 어느 변이지. 그 질문 하나가, 막막함을 일거리로 바꿔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