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학원이면 입소문으로 알아서 큰다고들 합니다. 저는 오래 그 말을 믿었습니다. 그게 틀린 말이었습니다.
상담실에서 이런 원장님을 자주 봅니다. 수업은 누구보다 정성껏 합니다. 아이 한 명 한 명 오답을 꿰고 있고, 밤늦게까지 교재를 고칩니다. 그런데 막상 학부모 앞에서 "그래서 저희가 왜 좋냐면요"를 말할 차례가 되면 목소리가 기어들어 갑니다. "뭐, 그냥 열심히 하는 거죠." 자기 입으로 자기 학원을 권하는 그 한순간이, 마치 사기를 치는 것처럼 민망한 겁니다. 좋은 걸 갖고도 좋다고 말을 못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그걸 '겸손'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건 겸손이 아니라 자기 제품을 권하는 일에 대한 죄책감이었다는 걸요.
문영호는 부산에서 영어회화 학원 YC College를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월 수강생이 370명쯤 되는 곳의 마케팅과 브랜딩을 직접 맡고 있습니다. 학원장이 쓴 마케팅 책. 이 한 줄이 제가 이 책을 집어 든 이유였습니다. 시중의 마케팅 책은 대개 쿠팡·토스·애플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멋지긴 한데, 읽고 나서 "그래서 7시 반에 보강 들어가는 우리 학원은 뭘 어쩌라고" 싶어지는 거죠. 그런데 이 저자는 자기가 든 모든 사례 옆에 YC College는 이렇게 했다를 나란히 붙여 놨습니다. 마케팅 이론을 학원 언어로 통역해 줄 사람을 한 권 안에서 만난 셈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엔 또 하나의 '잘 파는 법' 모음일 거라 기대했습니다. 후킹 멘트, 광고 카피, 전환율 같은 기술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발견한 건 기술 이전의 문제였습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대상은 좋은 제품을 갖고도 못 파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걸 만든 사람일수록 그걸 적극적으로 알리는 일을 '사기꾼 같다'며 꺼린다고요. 그래서 매출이 안 난다고요. 저는 이 대목에서 책장을 잠깐 덮었습니다. 제가 본 그 많은 원장님들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거기 그대로 적혀 있었으니까요.
이 책의 중심에는 RTB라는 세 글자가 있습니다. Reason To Buy, 우리말로 옮기면 고객이 사야 할 이유입니다. 핵심은 이 이유가 파는 사람의 일방적 주장이어선 안 된다는 데 있습니다. 학부모가 고개를 끄덕여 줘야, 그제야 비로소 RTB가 됩니다. 저자는 강력한 이유 하나만 있어도 매출이 오르지만, 이유는 많을수록 좋다고 말합니다. 쿠팡이 무료배송에서 멈추지 않고 30일 반품, 쿠팡플레이, 배달비 무료를 끝없이 쌓아 1위가 된 것처럼요.
여기서 이 책이 다른 마케팅 책과 갈라집니다. 시중의 설득서 상당수가 **"어떻게 더 그럴듯하게 말할까"**를 다룬다면, 이 책은 거꾸로 묻습니다. "우리가 떳떳하게 댈 수 있는 이유가 대체 몇 개나 되는가." 화법이 아니라 재고를 점검하게 만드는 책인 겁니다. 그래서 저자는 RTB를 일곱 가지 유형으로 나눠 줍니다. 문제 해결, 차별화, 신뢰성, 손실 회피, 디자인, 관계성, 새로움. 이건 멋진 말을 짓는 틀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가진 좋음을 빠짐없이 꺼내 보게 하는 일곱 칸짜리 서랍입니다. 학원장이 쓴 책답게, 저자는 이 일곱 칸을 자기 학원으로 직접 채워 시범을 보여 둡니다. 공교육이 못 푼 영어 말하기 문제(문제 해결), 왕초보반부터 원어민 수업을 필수로 넣은 구성(차별화) 하는 식으로요.
원장님이 이 책에서 건질 첫 번째는, 그래서 이 일곱 칸을 우리 학원으로 채워 보는 일입니다. 상담실에서 풀면 이렇습니다. 학부모가 "여기는 다른 데랑 뭐가 달라요?"라고 물을 때, 보통 원장님은 "저희가 좀 더 꼼꼼하게 봅니다" 정도로 답하고 맙니다. 두루뭉술한 약속 하나. 그런데 일곱 서랍을 미리 채워 둔 원장님은 다르게 답합니다. "저희는 영어를 못하는 게 아니라 영어가 무서운 아이만 받습니다(문제 해결). 그래서 6년치 오답을 손으로 적어 매주 보내드리고요(차별화·관계성). 지금 다니는 학부모 서른 분 후기를 보여드릴게요(신뢰성)." 똑같은 학원인데, 댈 수 있는 이유가 하나에서 셋으로 늘어난 겁니다. 학부모 머릿속에서 이 학원은 그만큼 더 또렷해집니다.
두 번째로 건질 것은 일곱 칸 중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신뢰성 칸입니다. 저자는 사람이 무언가를 사기 전 가장 두려워하는 건 손해가 아니라 실패라고 말합니다.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자책 말입니다. 학원만큼 이 두려움이 큰 상품도 드뭅니다. 한 학기를 잘못 보내면 아이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저자는 이 두려움을 푸는 세 열쇠를 줍니다. 많은 사람이 이미 선택했다는 증거, 전문가의 추천, 그리고 지인의 추천. 학원으로 옮기면 재원생 후기 한 줄, 같은 학교 엄마의 소개 한 마디가 화려한 현수막 열 개보다 세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 세 열쇠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모으느냐, 그 구체적인 손동작은 책 안에 따로 있습니다. 동조 효과와 상호성이라는 두 단어가 거기 열쇠로 걸려 있다는 것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제 어깨를 정말 내려가게 한 건 인사이트가 아니라 한 문장이었습니다.
저자는 표면적인 구매 이유와 진짜 구매 이유를 분리하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스타벅스에 가는 건 커피 때문이 아니라 '집도 회사도 아닌 제3의 공간'이 필요해서라는 거죠. 그러면서 그는 자기 학원의 진짜 이유를 이렇게 적습니다. 학부모가 YC College에 보내는 건 영어가 아니라 이민이고, 유학이고, 아이의 꿈이다. 저는 이 문장 앞에서 한참 멈췄습니다. 우리가 파는 게 영어 점수, 수학 등급이라고 믿는 한, 우리는 영원히 옆 학원과 점수표를 들고 가격으로 싸우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파는 게 사실은 한 아이의 1년, 그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불안과 희망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 정도로 무거운 걸 맡기는 사람에게, 우리가 좋은 이유를 떳떳이 대는 건 사기가 아니라 의무입니다.
이게 이 책이 원장님께 주는 진짜 선물이라고 봅니다. 우리 사업을 보는 자리 자체를 옮겨 주는 것 말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권하는 일'을 학부모에게서 무언가를 빼앗는 행위로 봤습니다. 그래서 미안하고 민망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자리에 서면, 권하는 일은 그만큼 좋은 걸 못 알아보고 지나칠 뻔한 사람에게 이유를 쥐여 주는 일이 됩니다. 사야 할 이유를 못 대는 건 제품이 약해서가 아니라, 권하는 게 죄 같아서였습니다. 그 죄책감을 내려놓는 순간, 정성껏 만든 수업이 비로소 입을 얻습니다.
물론 이 책을 덮어야 할 원장님도 있습니다. 책이 이끄는 손길이 워낙 친절하다 보니, 가르치는 실력이라는 1번 칸이 비어 있는데 RTB부터 채우려 들면 그게 더 위험합니다. 저자 자신이 못을 박습니다. 좋은 이유 만드는 법만 배워 나쁜 제품을 파는 사람은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RTB는 없는 실력을 지어내는 화장이 아니라, 있는 실력을 또렷이 비추는 조명입니다. 비출 게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의도적으로 문단을 잘게 쪼개 가볍게 읽히도록 쓰였습니다. 깊은 이론서를 기대한 분에겐 다소 얇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얇음은 약점이 아니라, 실행을 미루지 못하게 하려는 저자의 계산이라고 저는 읽었습니다.
그러니 거창한 마케팅 전략을 새로 짜실 것 없습니다. 이번 주에 종이 한 장을 꺼내, 일곱 칸을 그려 보시면 됩니다. 우리 학원이 학부모에게 떳떳이 댈 수 있는 사야 할 이유를, 칸마다 한 줄씩. 다섯 칸을 채우셨다면 우리 학원엔 이미 팔리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겁니다. 비는 칸이 있다면, 거기가 바로 그동안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던 자리입니다. 저는 이 책을 덮고 나서, "우리 학원이 뭐가 좋은지 어떻게 자랑하지"를 묻기를 그만뒀습니다. 대신 이렇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학부모에게, 그들이 동의해 줄 진짜 이유를 몇 개나 쥐여 주고 있는가.
| 세상에 팔 수 없는 제품은 없다 — RTB Strateg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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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영호 저 |
| 전자책 · 2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