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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독서노트2026.06.1610분 읽기

비관은 제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그저 한 번도 연습하지 않은 쪽이었을 뿐

상담실 책상 위에 성적표가 놓여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손가락이 한 과목 위에 멈췄습니다. 영어 92점이 아니라 수학 76점 위였습니다. 옆 칸의 92점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30분 상담 내내 우리는 76점만 이야기했습니다. 어떻게 끌어올릴지, 무엇이 부족한지, 어디서 무너졌는지.

상담을 마치고 나서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방금 한 시간 가까이 '잘못된 것'만 들여다봤습니다. 잘된 것은 단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오히려 마음에 걸렸습니다.

저는 늘 제가 비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새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안 될 경우의 수부터 헤아렸고, 잘 굴러가는 날에도 무너질 지점을 먼저 찾았습니다. 그게 신중함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다 마틴 셀리그만의 『플로리시』를 집었습니다. 처음엔 '긍정 심리학'이라는 말이 조금 가벼워 보였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뻔한 자기계발일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그 짐작은 첫 장에서 깨졌습니다.

셀리그만은 긍정 심리학의 창시자이자, 그 이전 20년 동안은 '학습된 무기력'과 우울증을 연구한 사람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누구보다 깊이 파고든 사람이, 인간이 어떻게 번성하는지로 방향을 틀었다는 사실이 이 책의 무게를 만듭니다. 그는 행복을 '기분 좋은 상태' 하나로 보는 기존의 관점을 스스로 비판하며 버립니다. 자기 이전 이론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대신 웰빙을 측정하고 키울 수 있는 다섯 갈래로 쪼갭니다. 긍정 정서, 몰입, 관계, 의미, 성취. 첫 글자를 따 PERMA라고 부릅니다. 뭉뚱그린 '행복'이라는 한 덩어리를, 각각 따로 연습할 수 있는 다섯 개의 근육으로 나눈 것입니다.

여기서 이 책이 보통의 행복론과 갈라집니다. 흔한 행복 책들이 "행복한 마음을 가지세요"라고 상태를 권한다면, 셀리그만은 "행복은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측정하고 구축하는 기술"이라고 말합니다. 긍정은 성격이 아니라 연습이라는 것. 이 한 문장이 제가 비관적인 사람이라 믿어온 핑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렸습니다.

그가 제시하는 연습 하나가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세 가지 잘 되었던 일'. 셀리그만은 인간의 뇌가 선천적으로 재앙에, 잘 안 된 일에 더 들러붙도록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가만히 두면 우리는 76점만 보게 됩니다. 이 편향을 지배하려면, 한 주 동안 매일 밤 잠들기 전에 그날 잘 되었던 일 세 가지와 그것이 잘 된 이유를 적습니다. 사소해도 됩니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6개월 뒤에는 덜 우울하고 더 행복해진다고 그는 적습니다. 흥미로운 건 셀리그만이 이 결론에 닿은 길입니다. 무기력을 그토록 오래 연구한 사람이, 결국 그 반대편을 똑같이 훈련시킬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쪽으로 평생을 옮겨간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책을 덮고 그 성적표 상담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원장님, 우리가 매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마음이 조금 무거워집니다. 학원이라는 공간은 본질적으로 '틀린 것을 찾는 곳'입니다. 오답을 표시하고, 부족한 단원을 짚고, 못하는 과목을 보강합니다. 우리는 하루 종일 76점을 들여다봅니다. 그게 우리 직업의 성실함이라고 믿으면서요. 저 역시 15년 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이라고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답을 짚는 건 우리 일의 정직한 절반이니까요.

다만 셀리그만이 보여준 것은 나머지 절반입니다. 그는 학교에서 웰빙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를 셋으로 정리하는데, 그중 마지막이 원장의 등을 곧게 폅니다. 긍정 정서가 학습 그 자체를 향상시킨다는 것입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긍정 정서는 사람의 관심 범위를 넓혀 창의적이고 포괄적인 사고를 키우고, 부정 정서는 범위를 좁혀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키웁니다. 둘 다 필요합니다. 그런데 학교는, 그리고 우리 학원은, 100년 넘게 '무엇이 잘못됐나'를 찾는 쪽으로만 아이들을 길러왔다는 것입니다.

이 한 문장이 제 학원을 다르게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칭찬을 '동기부여용 사탕' 정도로 여겼습니다. 혼내면 미안하니까 균형 맞추는 양념 같은 것. 그런데 셀리그만의 말이 맞다면, 잘된 것을 짚어주는 일은 위로가 아니라 학습 설계의 한 축입니다. 92점을 함께 들여다보는 30초가, 76점을 끌어올릴 사고의 폭을 넓혀준다는 뜻이니까요. 상담이 달라지고, 강사 회의가 달라지고, 자습실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부모에게 "자녀에게 가장 바라는 것"을 물으면 행복, 자신감, 의미라고 답하고, "학교가 가르치는 것"을 물으면 성취, 시험, 규율이라고 답한답니다. 두 답에 겹치는 단어가 거의 없습니다. 이 간극이 곧 학부모가 학원에 품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의 정체일지 모릅니다. 셀리그만은 이 간극을 메우는 일을 교육의 다음 과제로 봅니다.

물론 한계는 있습니다. 제가 읽은 판본은 책 전체가 아니라 일부였고, 회복탄력성이나 웰빙의 경제학 같은 굵직한 장들은 차례에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본 것은 이 책이라는 건물의 입구입니다. 다만 그 입구만으로도, 24가지 성격 강점을 스스로 점검해 상위 다섯 개를 매일 발휘하는 것이 행복의 공식이라는 대목까지, 들어가 볼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플로리시』를 덮고 그날 밤, 저는 처음으로 잘 되었던 일 세 가지를 적어봤습니다. 한 줄 적는 데 한참 걸렸습니다. 그만큼 저는 잘된 것을 보는 근육이 약했던 사람입니다. 비관은 제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그저 한 번도 연습하지 않은 쪽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다음 날 상담에서, 저는 76점을 짚기 전에 92점을 먼저 가리켰습니다. 어머니의 표정이 그 30초 동안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건 제가 오래 기억할 장면이 되었습니다.


플로리시 / Flourish / 마틴 셀리그만 저 / 우문식·윤상운 역 / 물푸레 /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