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을 닫을지 말지 고민하던 어느 새벽을,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숫자는 멀쩡했습니다. 통장도 한 달은 버틸 만했고, 학생도 갑자기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머릿속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이 길이 맞나. 내가 사람들을 끌고 가도 되는 사람인가. 강사 앞에서는 괜찮은 척하고, 학부모 앞에서는 자신 있는 척하는데, 정작 혼자 남은 새벽엔 내가 제일 못 믿겠는 사람이 나였습니다. 저는 그게 제 그릇이 작아서라고 오래 생각했습니다. 멘탈이 약한 원장, 사장 재목이 못 되는 사람. 그 자책이 가장 무거웠습니다.
벤 호로위츠의 『하드씽』은 그 새벽의 정체를 정확히 짚어 줍니다. 그건 제 그릇이 작아서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리더가 똑같이 통과하는 자리, 저자가 **악전고투(The Struggle)**라고 부르는 그 자리에 제가 서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호로위츠는 실리콘밸리에서 회사를 두 번 일으킨 사람입니다. 라우드클라우드, 그리고 옵스웨어. 지금은 거대 벤처캐피털의 공동창업자지만, 이 책이 묵직한 건 그가 성공담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회사가 망하기 직전까지 몰린 시간, 직원을 해고하던 날, 멘토에게 "파산을 준비하라"는 말을 듣던 순간을 씁니다. 그가 책 첫머리에서 못부터 박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시중 경영서의 진짜 문제는, 공식이 있을 수 없는 문제에 자꾸 공식을 주려는 것이라고요.
저는 처음에 이 책을 또 하나의 'CEO 성공 매뉴얼'일 거라 기대하고 폈습니다. 위기 돌파 7단계, 해고의 황금률 같은 깔끔한 체크리스트요. 그런데 제가 책장을 넘기다 멈춘 건, 매뉴얼이 아니라 한 줄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는 진짜 어려운 일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나눕니다. 큰 목표를 세우는 건 어렵지 않다. 그 목표가 실패했을 때, 사람을 내보내는 게 어렵다. 좋은 인재를 뽑는 건 어렵지 않다. 그 인재가 권리만 주장하기 시작할 때 대처하는 게 어렵다. 공식이 통하는 일은 사실 쉬운 일이고, 공식이 없는 일이 진짜 난제라는 겁니다.
여기서 이 책을 다른 경영서와 가르는 한 수가 나옵니다. 대부분의 경영서는 '평시'를 가정하고 쓰였다는 진단입니다. 호로위츠는 리더를 두 종류로 나눕니다. 평시 CEO와 전시 CEO. 평시는 핵심 시장에서 우세하고, 시장 자체가 커지는 시기입니다. 이때 리더가 할 일은 판을 넓히고, 권한을 위임하고, 합의를 모으고, 규칙을 지키며 이기는 것입니다. 전시는 다릅니다. 회사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시기. 이때 리더는 이기기 위해 규칙을 깨고, 사소한 것까지 직접 챙기고, 의견 차이를 용납하지 않고, 거의 편집증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이걸 학원으로 옮기면 그림이 또렷해집니다. 학생이 꾸준히 늘고, 동네에서 평판이 좋고, 강사도 안정된 시기. 이때 원장님은 평시 리더여야 합니다. 강사에게 수업을 믿고 맡기고, 새 프로그램을 실험하고, 회의에서 의견을 모으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핵심 강사가 학생 절반을 데리고 나가겠다고 통보한 날, 코앞에 큰 경쟁 학원이 문을 연 달, 환불 문의가 줄을 잇는 주간. 그 순간은 전시입니다. 전시에 평시처럼 굴면 학원이 무너집니다. 합의를 모으고 권한을 위임할 때가 아니라, 원장님이 직접 멱살을 잡고 끌고 가야 하는 때라는 겁니다.
제가 15년간 현장에서 본 가장 흔한 사고가 정확히 여기서 났습니다. 위기에 빠진 원장님들이 무너지는 이유는 대개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었습니다. 전시인데 평시처럼 굴어서였습니다. 핵심 강사가 흔들리는데 "강사 자율을 존중해야지" 하며 손을 놓고, 환불이 쏟아지는데 "민주적으로 회의해서 결정하자"며 시간을 끕니다. 반대 사고도 똑같이 많습니다. 다 평온한 평시인데 원장님 혼자 전시 모드라, 사사건건 다 챙기고 강사를 못 믿어 결국 좋은 사람을 다 떠나보내는 경우요. 호로위츠가 책에서 거듭 강조하는 진짜 기술은, 전시 능력도 평시 능력도 아니었습니다. 지금이 어느 쪽인지를 아는 것. 그리고 둘 사이를 갈아탈 줄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정말 멈춰 세운 건 이 책의 7장이었습니다. 호로위츠는 조직 설계, 재무, 채용, 해고를 다 다룬 끝에, 가장 어려운 CEO 기술은 따로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자기 자신의 심리를 관리하는 것입니다. 회사의 모든 문제가 결국 자기 잘못이라는 책임감이 의식을 짓누르는데, 그걸 견디는 게 어떤 재무 기술보다 어렵다는 겁니다. 그는 두 가지 흔한 실패를 짚습니다. 문제를 지나치게 개인적으로 받아들여 자기를 갉아먹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분리시켜 낙천적인 척하다 위기를 놓치거나. 이상적인 상태는 그 사이입니다. 긴급함은 또렷이 느끼되, 죄책감에 잡아먹히지 않고, 제정신으로 단호하게 움직이는 것.
이 대목에서 저는 그 새벽의 자책이 비로소 풀렸습니다. 원장님, 한 가지만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혼자 새벽에 흔들리는 건, 원장님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호로위츠는 위대한 기업가들을 인터뷰한 경험을 털어놓으며, 그들에게 비결을 물으면 거의 똑같은 답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천재적인 전략도, 남다른 직관도 아니었습니다. 그 답은 이거였습니다. "그만두지 않았을 뿐입니다." 잡스도, 저커버그도 그 악전고투를 똑같이 통과했습니다. 흔들림은 자격 미달의 증거가 아니라, 그 자리에 제대로 서 있다는 증거였던 겁니다.
그렇다면 흔들릴 때 무엇을 붙잡아야 할까요. 호로위츠가 든 심리 관리 기법 중 제가 학원 현장에 그대로 옮겨 쓰는 게 하나 있습니다. 벽이 아니라 도로를 보라는 것입니다. 경주용 차를 처음 모는 사람은 벽이 무서워 자꾸 벽을 본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선이 벽에 꽂히는 순간, 차는 정확히 그 벽으로 돌진합니다. 살려면 벽이 아니라 가야 할 도로를 봐야 합니다. 위기에 빠진 원장님들은 늘 벽을 봅니다. 나간 강사, 빠진 학생, 옆 학원. 피하고 싶은 것에 시선이 박혀 있으니 거기로 돌진합니다. 호로위츠의 처방은 단순합니다. 피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가야 할 길을 보라는 것. 나간 강사가 아니라 지금 남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줄지를 보라는 겁니다.
물론 이 책의 한계도 솔직히 말씀드려야겠습니다. 『하드씽』은 직원 수백 명을 거느린 기술 회사 CEO의 이야기입니다. 호로위츠가 다루는 위기의 규모, 등장하는 인물들의 무게는 학생 80명, 강사 서너 명의 동네 학원과는 결이 다릅니다. 해고 한 번이 신문에 나는 회사와, 강사 한 명과 며칠을 마음 졸이는 학원은 같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책에서 가져올 것은 기법의 디테일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입니다. 위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 지금이 전시인지 평시인지 먼저 묻는 습관이요. 덧붙이면, 제가 이번에 깊이 읽은 건 프롤로그와 위기·심리를 다루는 장들입니다. 해고를 어떻게 하는지, 사람을 어떻게 키우고 조직을 어떻게 키우는지를 다루는 뒷부분은 그 자체로 또 한 번의 독서를 부릅니다. 인사가 늘 골치인 원장님이라면 거기서 더 길어 올릴 게 많을 겁니다.
저는 이 책을 덮고 나서, 흔들리는 새벽을 대하는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엔 흔들리는 저 자신을 탓했습니다. 지금은 먼저 묻습니다. 지금 내 학원은 평시인가, 전시인가. 평시면 손을 풀고 맡깁니다. 전시면 부끄러워하지 않고 멱살을 잡고 끕니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새벽에 흔들리는 건 제가 못나서가 아니라 제대로 그 자리에 서 있다는 신호로 읽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읽기 시작하자 새벽이 덜 길어졌습니다.
위대한 리더의 비결은 자질이 아니었습니다. 흔들리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은 것, 그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번 주 단 하나만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원장님 학원이 평시인지 전시인지, 종이 한 장에 적어 보는 것. 그 한 줄이 다음 결정을 바꿉니다.
| 하드씽 — The Hard Thing About Hard Thing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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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 호로위츠 저 |
| 한국경제신문 한경BP · 2021 |
"원장님이 흔들리는 건 자질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이 전시이기 때문입니다."